<창세기 21:1~7>
저의 성장기와 청년기를 돌아보면 그렇게 추억될 만한 일은 별로 없고 짙은 회색빛의 암울함이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부모의 돌봄 아래에서 자라지 못했고, 때문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학습부진, 학습부적응으로 인해 학업성취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망 매고 왔다 갔다 하다가 가기 싫으면 안 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른 나이에 철이 들고 똘똘해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의지적으로 어떤 인간승리의 인생사를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머리도 좋지 않았고, 공부 역시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중‧고등학교 가서 철이 들어서 확~ 달라졌느냐?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친구들 대학 들어갈 때, 가정 형편 핑계대고 대학시험은 엄두도 못냈고, 취직도 해 보기도 하고, 갖가지 일들로 아르바이트도 해보기도 하면서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성장기와 청년기의 모습은 인생의 실패자와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 시기의 저에게는 자랑스러울 만한, 자랑할 만한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런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저는 인생의 실패자와 같았습니다. 제 인생에는 어떤 소망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닙니다. 나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어제 나눈 말씀과 같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가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실패할 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력해서 우리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그 깨지고 상한 우리의 인생을 다시 보배롭고 존귀한 그릇으로 새롭게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사라는 65세… 요즘 연령으로 환산할 때 중년의 때에 하나님께 부름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지니깐 교회라도 나가서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시련과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가난해져서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신앙을 알게 된다면 그는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생 속에 실패를 맛본 사람만이 가난한 심령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실패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는 그 때부터 마음속에 작은 천국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다 되도록, 사라는 90세가 되도록 후손이 없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후손이 없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겠습니까? 어쩌면 당대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물질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인생 자체로서는 대를 이을 수 없는 실패자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1절, 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사라가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절과 2절에서 유독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나이 75세 때 처음 말씀으로 언약하셨었고, 그 이후로도 종종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1절과 2절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전체에 걸쳐서 강조하고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3절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난 아들을 ‘이삭’이라고 이름 지었죠?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이름을 지은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창세기17:19절에서 이미 태어날 아들을 이삭이라고 이름 지으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낳은 아들을 이삭이라 부른 겁니다.
그리고 4절에서 아들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도 17장1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구요. 5절에서 아브라함 나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17장2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또 6절에서 사라가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이삭(그가 웃는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노년에 그렇게 웃게 될 것을 말씀하신 그대로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노년기에 접어들 때까지 후손이 없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실패자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아브라함과 사라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여러 가지 실패로 보여 지는 일들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지막 순간에 나를 웃게 하실 계획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나의 실패와 초라함을 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실패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더 크고, 더 넓고, 원대한 당신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