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1~20>
지난 3~4개월 동안 우리 교회는 새 성전 이전을 위한 인테리어 공사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었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건축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교회로서는 거의 성전건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건축하는 교회들과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의 애씀과 눈물과 수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연말 언젠가 있게 될 지도 모르는 ‘성전건축비전을 위한 40일 특별기도회’를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단지 기도로 미래에 있게 될 수도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뿐이었지 성전건축이라든가 교회를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는 계획은 저에게도, 우리 성도들에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회가 끝나고 2~3일 뒤부터 우리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이끄심으로 긴박하게 돌아간 새 성전 이전 프로젝트는 하나님께서 “너희 자신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과 함께 주신 미션이었습니다. 교회의 한 해 예산정도 되는 큰 금액을 짧은 기간에 마련해서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아직 개척교회 같은 그래서 재정적으로 여전히 빠듯한 우리 교회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설계와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저와 아내 사이에 의견이 부딪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저는 어찌되었건 좋은 자재를 써서 최선을 다해서 새 성전 인테리어를 잘 해보고자 하는 거였고, 우리 사모님은 ‘뭐 랜트비 내는 남의 건물에 큰돈을 들이고, 언제든 나가라 하면 이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데, 뭐 하러 남 좋은 일을 합니까?’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어떤 가치와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저와 아내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창할 수도 있지만 내세론(來世論)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제 아내의 말이 100%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아름답게 새 성전 공사를 마무리했는데, 만약에라도 건물주가 ‘나가라’하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두고 나가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인생의 모든 열정과 힘을 다해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그것을 막 이루었는데, 그 날 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또 교회가 엄청난 재정을 들여 화려하게 성전을 건축했는데, 그 건축이 끝나자마자 한 달도 안 돼서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면 어떠실 거 같습니까?
여러분은 천국과 영생을 믿습니까? 그것을 믿는다면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 세상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처럼…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서는 여행객처럼, 나그네처럼 살다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시기가 아브라함 믿음의 절정으로 보는데, 오늘 본문은 그 이후 약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의 믿음이 변함이 없이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내용은 죽음과 내세(來世)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를 살다가 늙어 죽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그 시신을 장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을 보시면,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헷 족속이 거주하는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큰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장사지낼 자기 소유의 땅 한 평이 없었던 겁니다. 사라를 장사를 지내야하겠기에 땅이 필요해서 헷 사람들에게 땅을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헷 사람 에브론에게 값을 주고 땅을 사서 그의 아내 사라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산지 약 62년이 됐고, 아브라함은 그 지역에서 종이 수천 명이 있을 정도로 대단히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땅을 소유하려면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었던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런 의문이 듭니다. ‘왜 아브라함은 자기 소유의 땅을 소유하지 않았을까?’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 하나가 있는데 4절에서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라는 말을 그가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11:9,10,15,16절에서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것이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살아야 할 영적 자세인 것입니다. 내 생명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옵니다. 여권을 만들어 아름다운 관광지에 여행 온 사람들이 그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올라타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영원의 본향인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세가 있다면 회개하고 본향 찾는 나그네의 삶을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