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19~26>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원래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었는데 이념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이렇게 갈라져 약 70년간 동족끼리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동족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통일의 방법은 서로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모두 통일을 준비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북한주민의 굶주림을 어떻게든 돕기 위해서 역대 정권들이 북한에 약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원)가 넘는 돈을 송금하거나 현물을 제공했다고 합니다(2017. 4. 21일 / 통일부 발표).
북한과 우리 남한이 아무 관계가 없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겁니다. 동족이기 때문에, 70년 전만해도 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돈 벌어서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지원해 준 겁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여러 가지 정치적인 평가들이 여전히 논쟁과 논란이 되고는 있습니다.
보통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자녀교육비를 1인당 3억 원 정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3억 원이 보통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금액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자녀이기 때문에 그것이 3억 원이든, 얼마든 부모로서는 최선을 다해 그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해 주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관계도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필요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끼는 딸이기 때문에 그 자녀가 울고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부터는 아브라함이 죽고, 이제 그 언약의 후계자인 이삭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사건 당시 아브라함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게 되는데, 그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40세 때 리브가와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시면,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삭은 리브가와 40세 때 결혼했는데, 결혼 후 약 20년간 자식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때 이삭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는 6명의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들이 또 여러 자식들을 낳았습니다(1~4절). 그리고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 역시 1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12~18절).
하나님의 언약(약속)의 자손이고, 믿음의 계보를 잇는 진정한 언약의 후계자인 이삭은 결혼하고서도 20년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있는데, 그두라의 아들들이나, 이스마엘은 아들들을 많이도 낳고 있는 겁니다.
이 모습은 이렇게도 보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도 돈도 잘 벌고, 큰 성공도 거두고, 어려움 없이 형통하기만 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나는 일도 잘 안 풀리는 거 같고, 늘 재정적인 일에 쪼들리는 거 같고, 왠지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질 때… 거기서 마음이 위축되기도 하고, 어떤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이삭의 오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가 아내의 임신을 위해 몇 년을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20년간 아이가 생기기 않았기 때문에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내의 임신을 위해 기도했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이삭의 오랜 기다림과 기도 끝에 리브가는 쌍둥이(에서와 야곱)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됩니다.
26절을 보시면,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에서와 야곱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 살펴보도록 하고, 이 구절의 하반절에 보시면,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삭이 40세 때 결혼을 했고, 그 후 20년간 자식이 없었는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오랫동안 기도하는 중에 자식을 주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주리려면 빨리 주시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과정을 지나 주시나?’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뭐든 쉽게쉽게 하는 불신자들의 모습과 힘들고 어렵게 이뤄내는 내가 종종 비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그만큼 거기서 큰 가치를 못 느낍니다. 감사의 삶도 모를 거구요. 남들은 다 자식도 잘 낳고 형통한 모습을 보며 이삭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힘든 만큼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불임이었던 아내에게 임신이 되었으니 기도응답의 체험과 감사를 한꺼번에 얻은 것입니다. 우린 이런 영적 관계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아무 관계가 아닌 삶이 아닌,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 더 깊고 친밀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