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27~34>
모세시대 때부터 문자로 기록된 성경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구별된 필사자들에 의해서 일일이 손으로 쓴 사본으로 기록되어 지금 우리의 손에까지 전달된 겁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은 ‘시내산 사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원 350년을 전후로 기록된 것들입니다.
이 사본은 1844년 독일의 ‘콘스탄틴 티센도르프(Constantin Tichendorf)’라는 사람이 학생의 신분으로 성지를 순례하고자 시내산에 있는 캐더린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며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커다란 홀 중앙에 놓인 커다랗고 넓적한 바구니에는 오래된 양피지들이 가득했는데, 그것들은 수도원의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사용될 것이었다. 서고 담당자는 썩은 양피지 두더미를 이미 태웠노라고 했다. 나는 이 종잇더미 속에서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희랍어로 기록된 꽤 많은 구약성경 사본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그 가치를 알고 있었던 티센도르프에 의해 가장 오래된 성경의 사본으로서 시내사본은 보존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마7:6)’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삭이 60세에 낳은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의 운명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아들은 잘 자라 장성했습니다. 쌍둥이 형제는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성격과 기질 그리고 가치와 같은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형인 에서는 와일드한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어서 집 안 일을 돕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씩씩한 아들 에서를 좋아했고, 그 아들이 사냥해서 잡아온 고기요리를 즐겼고, 그런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리브가는 조용하고 착한 성격을 갖고 있고, 집안일을 잘 돕는 둘째 아들 야곱을 밖으로만 도는 에서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29절, 30절을 보시면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사냥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에서가 야곱이 끓여놓은 팥죽을 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어찌 보면 형제간에 있을 수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일 겁니다. 이 때까지 한 집안에서 살았다면 야곱도 형이 사냥해 온 고기를 요리를 하거나 함께 먹었을 겁니다. 그러니깐 동생 야곱이 끓여놓은 팥죽을 좀 달라고 하는 에서의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일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하죠? 31절에서 “(내가 이것을 줄테니)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라고 장난스럽게 거래를 한 겁니다. 쌍둥이 형제나 자매를 보면 생일도 똑같고, 나이도 똑같은데, 한 뱃속에서 그냥 몇 초나 몇 분 차이로 형과 동생으로 갈리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동생 입장에서는 그 몇 초 혹은 몇 분 때문에 평생을 동생으로만 지내야 하는 겁니다. 동생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야곱 입장에서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쌍둥이 형과 동생의 차이보다 고대 사회와 아브라함 가문에 있어서의 장자와 차자의 차이는 훨씬 더 컸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장자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산을 두 배를 받았습니다(신명기 21:17절). 그러니 몇 초 혹은 몇 분 차이로 형과 아우로 나뉘었으니, 쌍둥이 동생 야곱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둘째는 아브라함 가문의 영적 언약의 계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에 옮겨와 살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그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장차 그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국의 아비의 특권을 주시겠다고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가문의 그 누군가는 그 영적 축복을 계승해 가야 했던 겁니다. 에서와 야곱이 열다섯 살 될 때까지는 그들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도 살아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영적 축복과 그 언약의 계승에 대한 생생한 믿음의 이야기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종종 들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영적 축복의 계승권은 형인 에서에게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이 그 축복의 계승자가 되길 늘 바라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늘 마음의 소원이었던 것을 형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맞바꾸자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았던 겁니다(32절, 33절).
그런데 이것을 34절에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났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히브리서 12:16절에서는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고 말씀하시면서, 육체적인 일시적인 쾌락 하나와 하늘로부터 임하는 영적인 축복을 맞바꾸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에서가 왜 장자의 명분을 팔았을까요? 에서는 그 영적 축복권을 야곱만큼은 안 믿었던 겁니다. 반대로 야곱은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물론 그것을 취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야곱은 그 이후 엄청난 인생의 고난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면, 믿는 만큼 기도하고, 믿는 만큼 응답과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안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고, 하늘의 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복과 언약의 계승권을 간절히 믿고 열망했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지파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