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11~18>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애굽 과정이 나옵니다. 바로 왕은 60만 명의 히브리 노예들을 그냥 보내줄 수가 없어서 계속 그들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애굽의 바로 왕이 여호와 앞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극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유월절 사건>입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등등 아홉 번의 재앙 때까지 바로 왕은 히브리 노예들을 보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장자 진멸 재앙> 즉, 애굽 내에 있는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재앙 앞에 바로 왕은 두 손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 있었지만, 그들의 자손들은 한 사람도 그 재앙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월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한 가족을 위하여 양을 한 마리 잡아서,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양의 고기를 그 가족들이 먹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앙의 천사가 애굽 땅을 칠 때, 그 양의 피가 발라있는 가정은 그냥 넘어갔던 겁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영어로는 Passover(넘어가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품이 좋건 그렇지 않건, 착하게 살았건 그렇지 않건, 종교적인 열심을 가졌건 그렇지 않건, 이스라엘 백성이건 이방인이건, 자유인이건 종이건…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속죄 양의 피를 문에 바르기만 했다면 그 피의 흔적을 보고 그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절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유월절 어린양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어떤 공로도 없지만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 양의 피가 문에 발라져 있는 것 하나만을 보고 죽음의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갔던 것처럼, 우리에게 그 예수의 흔적이 있을 때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6:12절, 13절을 보시면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갈라디아 내에 들어온 어떤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의 믿음을 혼란에 빠뜨린 겁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함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약의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은 사람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던 겁니다(참고, 사도행전 15:1). 할례는 몸에 있는 구원의 표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거짓 가르침을 하는 이들을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라는 것은 13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4절 상반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 받았던 것은 문에 바른 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었고, 오직 그 피 하나만을 보고 그들을 구원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의 자랑을 하려는 영적 태도는 경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행위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그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7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하였습니다. 구약의 할례라는 표가 몸에 했었다면, 예수의 흔적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새겨져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이 우릴 구원하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에서 종교적 열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자기는 무엇을 했고, 어떤 봉사를 했고, 자기가 이런 사람이고… 이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는 종교적 열심을 가졌었는지 몰라도 참된 신앙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 열심을 통해 종교적 흔적을 갖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에게서 예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면 그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예수님의 흔적이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