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7:1~11>
제가 살면서 몇 번 자동차를 구입했던 적이 있었는데, 차를 새로 뽑아보기도 하고, 중고차를 사서 타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차를 탈 때하고, 중고차를 탈 때하고 제 마음의 자세가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할부를 끼고 몇 년 동안 갚아나가는 조건으로 새 차를 샀어도, 제가 그 차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먼지 털이로 먼지를 싹 털어주고 반짝반짝 윤을 내고, 조금이라도 더러운 게 묻어 있으면 당장 그 오염을 닦아 줍니다. 당연히 세차도 자주 합니다. 운전할 때도 어디 긁힐까 아주 조심조심 몰고 다닙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또 한 번 먼지를 닦습니다.
그런데 중고차를 탈 때는 제 마음의 태도가 정말 다릅니다. 먼지를 닦아도, 세차를 해도 별로 티도 안 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먼지도 잘 안 닦고 세차도 자주 안 하고 먼지가 수북한 채로 운전할 때가 많습니다. 운전도 새 차를 탈 때처럼 조심조심 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관리를 잘 안 해 주니깐, 차는 더 빨리 노후되는 거 같고, 그 차에 대해서 애정도 잘 안가고, ‘어서 빨리 다른 차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인가를 귀하게 여기면 그것은 그에게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되지만, 어떤 것을 함부로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빨리 처치해 버리고 싶은 고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있는데,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길 때 그들에게 그 은혜가 계속 이어지게 된다는 영적 원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민수기26장에서 출애굽 이후 두 번째 인구조사가 있었습니다. 대상은 이십세 이상의 전쟁에 나갈만한 모든 남자를 대상으로 조사되었습니다(26:2).
민수기 26:33절에 보면,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기록되지만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인구조사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6:53절, 54절에서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27:1절에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와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을 찾아온 것은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고 다섯 명의 딸들뿐이었고, 그녀들의 아버지 슬로브핫은 광야에서 일찍 죽었습니다. 때문에 그 집은 인구조사 시에 계수에 들지 않았고, 그것은 26:53절, 54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바와 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면,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그러니깐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고 그 가문이 없어지고, 그 가문이 가나안 땅에서 기업으로 받을 땅도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엄연히 다섯 명의 딸들이 있으니깐 그 딸들은 자기들을 통해서 그 아버지의 기업을 받아 잇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것을 여호와께 아뢰고,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사모함과 적극성에 감동하셔서 그들에게도 기업을 줄 것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8절부터 11절까지 이와 같은 경우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규례를 만들어 주시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속한 지파가 므낫세 지파였는데, 계수된 20세 이상 된 남자 인원만 52,70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파까지 다 하면 무려 6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이란 사람만 딸만 낳은 사람이었겠습니까? 그 수십만 명이 모두 아들이 다 있었겠습니까?
분명 그 중에는 슬로브핫의 가정과 비슷한 경우가 더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갖고 모세를 찾아온 것은 오직 슬로브핫의 딸들뿐이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딸들은 비록 아비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의 기업에 대한 남다른 사모함이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마치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야곱이 그 장자권을 사모한 이야기와 비슷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그 은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귀하게 여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