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나의 피난처”

<민수기 35:22~34> 

매년 1~2천 명 가량 북한을 이탈하는 ‘탈북자’가 한국으로 망명을 신청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탈북 하는 경로로 많이 사용되는 곳이 동남아의 대사관(영사관)입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발각하면 북한으로 북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북한이탈 주민들은 중국 정부기관으로는 망명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또 중국 내의 타국의 대사관들 역시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에 망명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십일 또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중국에서 떠돌다가 대륙을 가로질러 중국접경국인 동남아의 베트남이나 미얀마 같은 곳에 도착해서 망명을 신청하는데, 아무래도 베트남과 미얀마 역시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태국 대사관 같은 곳으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TV뉴스를 통해서 탈북자들이 사력(死力)을 다해 다른 나라의 대사관 담을 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대사관 안에만 들어가면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탈북자들은 범죄자이지만, 그들이 타국의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할 때, 그들은 북한의 법이 아니라 그 대사관이 속한 국가의 법과 국제법상으로 신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35장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만들어질 <도피성 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2절~25절을 보시면,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악의가 없이 우연한 어떤 사고를 통해서 누군가를 죽이게 된 경우 즉 ‘과실치사(過失致死)’를 말합니다. 과실치사라 할지라도 분명 죄가 있으나, 정상을 참작하여 그 죄인이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피성 제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특이한 규정이 하나 있는데, 25절 하반절에 보시면,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깐 과실치사로 사람을 죽였을 지라도 어쨌든 살인은 큰 죄인 것입니다. 하지만 정상을 참작해서 도피성에 피해서 보호를 받을 수는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 성을 떠나는 동시에 피해자의 유족들이 복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가 도피성을 떠나면 더 이상 보호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입니다.

28절을 보시면,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규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온 백성을 대신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대제사장의 죽음은 곧 도피성에 피한 죄인들의 대속적(代贖的) 죽음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7:27절에서
“그는 저 대제상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바쳐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代贖物)이 되신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에 있어 대제사장의 죽음은 곧 도피성 안에서 보호 받고 있던 이들이 그 죄를 용서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대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0~32절에 보면 ‘속전(贖錢)’ 즉, 보석금과 같은 것을 통해서 그 죄를 절대 용서 받을 수 없음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피 흘린 죄는 반드시 피를 통해서만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에서도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보호 받고, 용서 받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밖에서, 신앙 밖에서, 말씀 밖에서, 믿음 밖에서는 결코 보호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생활 중에 예수 밖에서의 삶의 태도와 행동들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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