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1~18>
어제 아침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통해 뉴스를 보니, 두 가지 헤드라인이 떠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국인 단체관광 재중단』이란 거였는데, 우리나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 THAAD)와 관련해 지난 5월부터 중국정부는 한국행 중국 단체관광을 중단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28일부터 부분적으로 한국행 단체관광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었다가, 우리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통해 사드 보복 철회에 대한 기대가 커졌는데, 중국정부가 다시 한국행 비자발급을 거부하고 있어 오려고 했던 단체관광이 재중단되었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의 뉴스는 『중국어선 44척 불법 조업, 해경 총탄200발 발사』했다는 거였습니다. 19일 새벽부터 20일까지 중국어선 44척이 전라남도의 가거도 북서쪽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시도했고, 우리 해경이 경고방송을 했었지만, 쇠창살과 철망을 설치한 중국 어선들이 경비함정으로 돌진해서 소총과 기관총 등을 발사했고, 중국 어선들이 도주했다는 기사입니다.
이런 정치 외교적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가 어렵습니다. 해결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한쪽에서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됩니다. 하지만, 국익의 문제가 달려있고, 자국 국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때문에 최근 중국과 우리는 계속 냉전 중입니다.
민족과 민족 간에 화평이 없는 이유, 부부사이에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늘 다툼과 분쟁이 있는 이유는 누군가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거나 양보한다는 것은 누군가 한 쪽이 ‘희생’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메시야 되신 예수님은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원수 된 관계를 화평케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화평의 비밀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에베소는 지금의 터어키 서쪽 지방에 위치한 도시였고,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세워진 이방인 교회였습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에베소 사람들은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들은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받은 이들이었고, 선택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13절, 14절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사람들은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고, 그분께서 그들 사이의 화평이 되어 중간의 막힌 담을 그 분의 육체로 헐어버리셨다는 겁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갖고 있는 자였고, 할례를 받았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은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겁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너희는 구원의 어떤 조건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구원의 어떤 조건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대로 죄의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율법적 요구를 당신의 희생으로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이방인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서 구원 받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선택된 민족도 아니고, 율법도 모르고, 할례도 받지 않았지만, 내가 대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내가 저들 대신 피를 흘림으로 대속(代贖 : 대신 댓가를 지불했다)했다. 그러므로 이제 저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그 희생이 있었기에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든, 이방인들이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뿐만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화평케 하셨습니다. 16절에서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대신 희생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된 것을 화평의 관계로 만드신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 화평을 이룬 비결은 ‘희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희생의 사랑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 희생하면 더 이상 다툼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또한 성탄절을 앞두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주시려 희생하러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배워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