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12>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 파라과이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인구 2만 명의 농촌 ‘알모롱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의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이고, 때문에 범죄율이 높아서 4개의 교도소가 죄수들을 수용하기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알모롱가는 복음화율 98%의 은혜로운 도시가 되었고, 36곳의 술집 중 33곳이 문을 닫았고, 수용이 부족할 정도였던 교도소들은 모두 폐쇄되어 주민행사나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알코올 중독자도 거의 사라졌고, 모든 가정들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도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와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도시에서 생명을 걸고 영적전쟁을 싸웠던 ‘리스카흐체 마리아노(알모롱가 갈보리교회)’ 목사님이 있었던 겁니다. 수많은 간증거리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수많은 협박과 생명의 위협을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 목사님이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폭력배들이 마리아노 목사님을 끌고 가 손을 묶은 뒤 안면을 후려치고, 입에 총구를 넣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 순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따그닥, 따그닥, 딸그락” 소리만 낼 뿐이지 총이 발사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간섭에 놀란 폭력배들은 겁을 먹고 그 길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해 도리어 깡패들이 변화되고 도시가 변화되는 역사가 있었던 겁니다.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금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은 그가 갖고 있었던 그 능력 또는 그가 의지하던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성전 미문 앞에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어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던 불쌍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치료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얼마나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고, 격려해 줄 일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면,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이 예수 이름을 통한 기적을 통해 예루살렘 주민들 중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은 그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이었고, 유다민족의 부와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종교적 사회였던 유다민족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치유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불쌍한 한 사람이 부활의 복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상황들이 싫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2절에서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겁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들은 현세가 좋았습니다. 유다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세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소망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돈을 사랑했고, 세상의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그들의 믿음을 흔드는 사건이 터진 겁니다. 예수의 부활의 능력으로 평생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되었고, 자신들을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 가운데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펼쳐져서 우리의 입지가 좁아지면 어떻하지?’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의지하고, 세상적인 힘을 의지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이 자칫 잘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거 같은 겁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것들이 사라지거나, 망하거나 하면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돈을 의지하던 사람이 돈을 잃어버리면 그 때부터 불안과 염려 속에 사는 겁니다. 어떤 힘 있는 사람을 의지했었는데,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거나 그가 죽거나 하면 또 두려움이 올 수 있는 겁니다. 내게 있던 어떤 권력과 힘을 의지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을 잃게 되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5절 이하에 보면 산헤드린의 회원들인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 대제사장과 그 문중이 모여서 사도들을 체포해 그들을 협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참 재밌습니다. 지금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뭔가 두려움에 잠겨 있는 것 같고, 그 앞에 심문과 협박을 당하는 사도들은 너무나도 당당한 겁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두려움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들에게는 구원의 이름, 능력의 이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사라지거나, 망하지 않고 언제나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겠습니까? 변하지 않고 영원하신 구원의 이름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