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22~35>
사도행전 15장에서는 복음과 율법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까지 세 번째 벌써 타종교나 이단을 예를 들고 있는데, 오늘은 이슬람에 대해서만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슬람의 구원관은 철저하게 자력(自力)구원입니다. 그들은 “선한 행위가 더 무거운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나, 선한 행위가 가벼운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을 잃게 되고 지옥에 머물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때문에 그들은 종교적 의식들을 매우 강조하는데, 그들은 다섯 가지 신조(기둥)에 순종해야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1. 신앙고백(샤하다) : “오직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2. 기도(살라트) : 매일 다섯번의 의식기도를 해야 합니다.
3. 기부(자카트) : 기부는 일 년에 한 차례 주어진 일정 비율에 따라야 합니다.
4. 금식(사움) : 라마단 금식기간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5. 순례 여행(하지) : 무슬림은 적어도 일생에 한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순례 여행을 해야 합니다.
종교의 특징은 끊임없이 어떤 율법(규율)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때로는 정죄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수년 전에 ‘제퍼슨 베스키(Jefferson Bethke)’라는 사람이 『종교는 싫지만 예수님은 사랑하는 이유(Why I hate religion, but love JESUS)』라는 4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도전을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엔 우리나라에 책으로도 번역 출판되기도 했는데, 그 영상의 후반부에 ‘예수님과 종교를 비교’하는 내용이 있는데,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히 말해 둘 게 하나 있는데 예수님과 종교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는 사람이 만든 겁니다. 하나는 치료약이고 하나는 전염병입니다. 종교는 ‘하라’하고, 예수님은 ‘이루었다’라고 합니다. 종교는 노예라고 하고, 예수님은 아들이라 합니다. 종교는 굴레를 씌우고, 예수님은 자유를 주십니다. 종교는 눈멀게 하고, 예수님은 눈 뜨게 하십니다. 이렇게 종교와 예수님은 전혀 다른 종족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원과 용서나 값없이 주어지는 겁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순종 때문입니다.”
( 참조영상 : https://youtu.be/GJrqzfMfhSY )
‘종교와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롬3:10)”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복음’은 우리를 괴롭히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병든 영혼을 치유하고, 죄에 묶여 있는 이들을 자유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복음(Good news)’이 되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이방인들이 중심이었던 ‘안디옥 교회’는 유대지역에서 온 어떤 거짓교사들로 인해서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었고,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만 믿어서는 부족하고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라고 사람들을 가르치니, 교회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안디옥 교회의 성경 교사들과 유대로부터 온 거짓교사들과의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었던 겁니다.
다행히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많은 신학적 변론을 통해 기독교구원관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게 되고, 그 내용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게 됩니다.
24절 말씀을 보시면,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너무 기쁘고 충만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특징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율법과 종교적인 것이 안디옥 교회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그것에 얽매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영적으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 유대에서 온 교사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사도들에 이해 정식으로 파송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28절과 29절을 보시면,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복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셨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이 방종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성경에서 벗어난 잘못된 언행(言行)은 피해야 하고, 모든 더러움과 악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괴로움과 혼란함이 있다면, 우리가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엇인가 잘못된 생각에 내 마음과 정신을 빼앗겼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치유와 자유만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의 치유와 자유를 누리시는 복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