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9~40>
에베소서 2: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와 능력이 아닌, 오직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났기 때문에도, 우리가 선해서도, 우리가 공로를 많이 세워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께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받은 겁니다.
하지만 ‘은혜’라는 것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저 받는 선물’이지만,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 것 중에 뭔가를 희생해야만 줄 수 있는 겁니다. 엊그제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을 했는데, 저는 짧게 뉴스를 통해서 봤습니다. 정말 엄청난 규모의 공연과 퍼포먼스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모두 그것을 즐겁게 봤겠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감독과 스텝들은 그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엄청난 땀과 수고와 재정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공짜로 본 것 같지만, 그것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희생이 따르는 게 은혜의 원리라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복음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거저 받을 겁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그 사람에게 전해지기까지는 누군가는 그 복음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겁니다.
바울 사도가 2차 선교여행을 떠나서 빌립보라는 지역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바울사도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종은 사람들에게 점을 쳐 주고, 그 여종의 주인들에게 물질적으로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자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계속 소리소리 질러댔고, 여러 날을 그렇게 하니깐 바울이 아주 괴로워서 그 여자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16:16~18절).
19절~21절을 보시면,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바울은 복음으로 귀신에 매여 있던 한 여자를 치유해 모든 매임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었는데, 오히려 그 일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가니깐 여종에게서 점치는 능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깐 그 주인이 돈벌이가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그 성의 관리들에게 끌고 가 이들이 성을 소란하게 하고 어지럽힌다고 억울한 누명을 씌어 고발을 한 겁니다.
바울과 실라는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옷이 찢기고, 채찍에 맞아 옥에 갇히게 된 겁니다. 복음으로 귀신에 매여 있는 자를 살려줬지만, 그 대신 그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했지만 ‘의를 위한 핍박’을 달게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고, 그 소리가 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묶인 것이 풀려졌습니다. 간수장은 자다가 깨어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죄수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으로 큰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죽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 때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28절)”하며, 간수장의 자결을 막게 됩니다. 간수장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30절)”라고 묻게 되고, 여기서 그 유명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하며, 그와 그의 온 집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부에 처음 한인교회를 개척하려고 예배당으로 쓸만한 상가를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렌트비가 너무 비싼 겁니다. 몇 군대 알아본 곳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곳은 지금 성전으로 쓰고 있는 상가의 1층이었습니다. 그런데 렌트비가 너무 비싼 겁니다. 렌트비 하고 관리비하고 그리고 저희 집 생활비하고 하면 적어도 당시 한화로 5~6백만 원이 매달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도 없었고 어디서 렌트비를 후원해 주는 곳도 없었고 오로지 제가 재정을 마련해서 매달 채워놔야 했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개척을 위해 준비된 재정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곳이면 좋긴 하지만, 여긴 너무 비싸다…. 조금 저렴한 곳으로 알아봐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좀 더 저렴한 곳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들은 주차공간도 없었고, 시설도 너무 지저분하거나, 너무 구석진 곳에 있어서 한인들이 찾아오기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는 재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에 집에 와서 타일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깨닫게 하시면서 주님께서 제게 “복음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지금 이 땅에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고, 기도 처소와 예배처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데, 너 왜 돈 때문에 그러고 있느냐? 복음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주신 이 응답 때문에 당장의 재정적인 문제는 모두 내려놓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을 진행해서 오늘 날 세부 땅에 세부광명교회가 세워져 충만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전도하려면 그게 그냥 되지는 않습니다. 그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그를 위해 어떤 희생들이 필요하기도 한 겁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위한 대가는 반드시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바울사도 일행의 밀알과 같은 희생은 또 다른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