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21~41>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우상이며,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은 ‘탐욕의 신’입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옷만 갈아입어서 모양만 조금 다를 뿐이지, 모두 다 한 가지 우상인 ‘탐욕의 신’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두 우상이 있는데, ‘바알(Baal)과 아세라(Asherah)’입니다. 바알은 남자신이고, 아세라는 여자신입니다. 그리고 바알은 ‘풍요의 신(농경의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입니다. 바알은 물질적인 풍요를 내려주는 신이고, 아세라는 많은 자손을 번식하게 해 주는 신입니다. 그리고 이 두 우상의 제사의식은 매우 음란했습니다.
열왕기하 23:7절에 보면 유다의 요시야 왕이 타락한 종교를 개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숭배와 같은 ‘남창의 집’이 있었고, 여인들이 아세라 여신을 위한 휘장을 짜는 처소가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그 안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난잡한 우상의 제의(祭儀)가 진행되었으니, 몰락해 가던 유다의 영적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해 보게 하는 기록입니다.
사람이 우상을 만들지만, 그 우상은 단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신(神)일뿐입니다. 그 탐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물질적 탐욕’ 그리고 ‘성적 탐욕’입니다. TV 뉴스에서 보도되는 대부분의 나쁜 뉴스는 이 두 가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신에 의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만, 결국 이 두 신에 의해 몰락해 가는 모습을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목격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터어키 지방의 에베소 선교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도 베풀고,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고, 방언도 하게 되었고, 바울이 쓰던 손수건만 얹어도 병이 떠나가고 귀신도 떠나갔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말씀을 강론함으로 제자들을 따로 세우기도 했습니다(19:1~12).
오늘 본문 바로 이전에는 수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는 장면이 나오고, 에베소 지역에서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점쟁이 혹은 무당)이 예수를 믿고 자신들의 마법 책을 다 모아 가지고 불사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책값이 은 50,000이나 되었다고 합니다(19:17~19).
그런데 은혜가 있는 곳에 어디나 방해가 있고, 영적 저항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에베소 역시 그러했습니다. 24절을 보시면,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이 에베소에는 ‘아데미(Artemis)’라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 있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1호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데미 신전의 흔적만 남아있지만, 파르테논 신전보다 무려 4배나 더 큰 신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보다 높이가 두 배나 높았고,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꼽습니다.
때문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베소에서 아데미 여신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또 그 우상숭배와 관련된 돈벌이가 그 도시의 꽤 큰 수익원이었습니다. 세부에도 ‘산토니뇨(Santo Nino : 아기예수)’와 관련된 비즈니스와 축제가 아주 발달되어 있습니다. 산토니뇨 성당에 가보시면 그 주변에는 산토니노 인형들과 관련된 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1월에는 ‘시눌룩(Sinulog)’이란 산토니뇨를 기념하는 세부의 가장 큰 축제가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주의 및 개혁주의 교회들은 그 모든 것들을 우상숭배로 봅니다. 바울 사도가 지금 이곳에 와도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25절부터 27절을 보시면,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우상과 관계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아데미를 위하는 것 같이 말하지만, 25절과 26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타격이 있다는 겁니다. 물질적인 탐욕이라는 것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결국 이 일로 인해 에베소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물질적 탐욕의 신이든, 성적인 탐욕의 신이든 그 탐욕은 하나님과 복음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탐욕이 커지면 커질수록 복음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항상 이 탐욕의 신을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탐욕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참된 신앙과 하나님의 나라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탐욕들이 혹시 나와 주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