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1~11>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고민하게 되는 게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내가 하고자하는 이 일이 과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청년시절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관계된 책들을 읽어보기도 하고, 나름 그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도 했었던 거 같습니다. 특히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청년들이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겁니다. 어쨌든 이런 고민들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고민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리하게 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 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성경말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계획이든 그것은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내 마음에 소원(열정)이 일어나는가? 빌립보서2:13절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열망을 주신다는 겁니다.
셋째, 그것을 위한 은사(재능, 능력)가 더해지는가? 은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고전12:11). 하나님께서 그 은사(재능)대로 우리를 사용하시려 하시는 겁니다.
넷째, 형통케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실 때, 그 일에 형통함을 더해 주십니다(창39:3). 비전을 이뤄가는 과정 속에 고난과 시련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꾸 막으신다고 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거기서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섯째,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딤후1:7).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14:17)”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향한 진정한 주님의 뜻이 있다면 여러분 안에 기쁨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다’라든가 ‘성령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라는 식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불신자들 앞에 확신하며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내용 중에 적용해 볼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100명의 군사를 거느린 백부장에 의해 로마로 압송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독에게 재판을 받던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북쪽의 시돈을 거쳐, 구브로(Cyprus)섬 북쪽 해안을 따라 터키 남부 항구도시인 ‘무라 시’에서 좀 더 큰 알렉산드리아 배로 바꿔 타게 됩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1절부터 6절까지도 그 항해 일정을 상세하게 말하고 있고, 7절과 8절에서도 ‘간신히’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수십 일에 걸쳐 가고 있는 그 항해가 순탄하지 않고 매우 위태위태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가 태양력으로 10월 경 이었는데, 그 즈음에 지중해에 강풍을 동반한 태풍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후적으로도 항해하기 좋은 때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때 바울이 백부장에게 말합니다. 10절입니다.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하지만, 11절에 보면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율법학자요, 전도자인 바울의 말보다 항해의 전문가들인 선장과 선주의 말이 더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했을 겁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진행되는 21절부터 26절의 내용을 보자면, 바울 스스로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이 모든 상황 속에 성령께서 그에게 어떤 감동을 주셨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렸을 때, 네 번째 ‘형통케 하시는가?’라는 것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뭔가 계속 그 길을 막는 무엇인가 있을 때, ‘혹시 이것이 마귀의 방해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시는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는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가 무리하게 항해를 강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고, 바울을 통해 그 일이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이 있고 때로는 어떤 경험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나는 내 욕심과 내 뜻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순간순간 물으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최근 고민하고 있는 문제나, 성령께서 내 안에 주신 어떤 감동 그리고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어떤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함 받는 복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