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1:12~22>
제가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고, 목회후보생으로 준비하는 기간과 목사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사역하는 기간 동안 저에게도 목회의 모델들이 있었습니다.
–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작은 예수로 세워 가시는 목사님.
–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로 세워 가시는 목사님.
– 기도목회를 통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을 변화시킬 기도의 용사로 무장시키는 목사님.
그런 목사님들을 보면서 저 역시도 그런 목회자가 되길 소망했고, 여전히 이 땅에 그런 교회를 세워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서도 경계해야 할 목회의 모델들도 있습니다. 지나친 성장주의와 기복신앙 그리고 물량주의와 같은 것에 가치를 둔 목회는 지양(止揚)해야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한국교회가 놀랍도록 외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고, 또 목회자들의 마음에 세속적 가치가 어느 순간부터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어느 주일 날 성도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워 예배하면 마음 저 밑바닥에서 우쭐거리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교만함과 과시욕이 꿈틀거리는 겁니다.
때문에 이런 악하고 망할 마음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할 때마다 주일날 성도들의 예배참석자 수를 세지도 않고, 그걸 위해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예배 중에 하나님이 임재가 가득한 천상의 예배를 올려드리게 해 달라’고, ‘우리 성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주일 예배 출석수를 위해서 기도하지는 않지만 ‘새벽에 기도의 용사 30명을 채워주세요. 금요일에 70명의 기도의 용사를 채워주세요’라는 기도는 합니다. 저는 그 목표가 달성된다면 더 많은 기도자들이 세워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겁니다. 제가 세속적 물량주의와 기복신앙에 젖지 않기 위해 순간순간 깨어 있으려고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엄청난 부흥을 목격했지만, 그 이면의 부정적 측면과 부작용들로 인해서 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로의 영적 성장을 사모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좋은 본보기도 있고, 때로는 부정적인 본보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예레미야애가 1:12~22절은 유다의 예루살렘성이 스스로 화자(話者)가 되어 자신을 부정적 본보기로 ‘보고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쉬운성경)을 보시면,
“길 가는 사람들아, 이 일이 너희에게는 상관이 없느냐? 와서 내 모습을 보아라. 내게 닥친 고통만한 것이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신 날에 내게 고통을 내리셨다.”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세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이스라엘(유다)의 상징입니다. 주변 나라의 부러움을 사던 나라가 지금은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지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와서 보고 깨달으라는 겁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뼈 속까지 심판의 불로 태워졌고, 나라는 몰락해서 비참하고 황폐하게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14절을 보시면,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그들이 어깨에 소처럼 무거운 멍에가 묶고 얽어져 겨우 한 발을 옮기고 있지만, 그들을 포로로 붙잡고 감시하는 자들은 감히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자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까? “주께서 나(예루살렘)를 넘기셨도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에 의해 대적에게 넘겨졌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18절을 보시면,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유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는 멸망했고, 모든 젊은이들은 포로로 사로잡혀갔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이 왜 그런 처지가 되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20절에서도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18절에서도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나를 보고, 너희는 나처럼 되지 말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벌하실 것이다. 나의 이 비참함과 고통을 보고 너희는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루살렘은 ‘보고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저버릴 때, 주님은 공의로 징계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지금도 뉴스를 오르내리는 수많은 부정적 소식들을 그냥 넘기지 마시고 그것을 보고 깨닫고 주님의 말씀 앞에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