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1~22>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라는 과정이 그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기도가 쉽다고 하는 분들은 영적으로 많이 훈련된 사람들의 말일 겁니다. 그러나 기도는 노동과 같이 힘쓰고, 애써야 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간혹 ‘하나님께서는 꼭 기도해야만 무엇을 들어주시나? 힘들고 어려운 데 그냥 주시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큰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겁니다. 아무 노력도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아 생활하는 자녀들은 감사함도 모르고, 그 물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 빌게이츠는 “그것은 후손들의 무능함과 허영심이라는 독이 된다”라고 했고, 때문에 자녀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든 그냥 주실 수 있는 능력도 충분하십니다. 하지만, 기도라는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주시는 것은 응답보다 그 기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인격과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 삶에 대한 감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현상과 상황과 모든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7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그 분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9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광야와 사막을 지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4절과 5절을 보시면,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약 1,500km의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고, 지금처럼 중간 중간 휴게소 같은 곳이 없어 때로는 배고픔과 갈증으로 심한 어려움들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절과 7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그런데 그들이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고통에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고향 땅까지 무사히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16절까지는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10절과 11절을 보시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분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에 망했었던 겁니다. 그러나 13절, 14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그들이 회개하고 그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포로에서 자유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부터 22절에서 고난의 이유가 ‘그들이 죄악의 길을 따르고 악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19절과 20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 분의 뜻을 저버리고 범죄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6절)”,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3절)”,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9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고치시고 위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을 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부르짖는 자녀의 기도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나옵니다. 억울한 과부가 매일 재판장을 찾아가 호소하면, 불의한 재판관이 귀찮아서라도 그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겁니다. 누가복음18:7절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죄가 있어도, 자주 실수할 지라도… 부르짖을 때 주님은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