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1:1~23>
모든 사람은 복된 인생에 대한 그림을 각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또 치열한 취업의 문을 뚫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또 그 직장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멋지고 예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고 열심히 저축하고 집도 마련하고, 좋은 차도 사고 그렇게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또는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도 하며 그 이상의 행복을 경험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행복한 삶이 쭉 이어지면 좋은데, 어느 날 그 모든 행복을 한 순간에 빼앗겨 버리는 일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단란하던 가정 속에 불륜과 같은 일이 개입되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어도 그 과정 속에 불법적인 일들이 있거나, 사람들에게 비난 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거나 했다면 그 행복은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신 복을 망치는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것은 곧 우리의 복을 망치는 주범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신명기 2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 있을 수 있는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규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예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피살된 시체를 발견했을 경우(1~9절). 범인이 누군지 모를 때 그 피살된 곳의 가장 가까운 마을의 장로들은 아직 짐을 져본 경험이 없는 어린 암송아지를 취해서 속죄 제물로 잡아야 했습니다. 어린 암송아지가 얼마나 예쁩니까? 그런데 아무 죄도 없는 그 어린 암송아지가 그 죄를 대속(속량)하는 겁니다. 의도를 갖고 살해했든, 부지중에 살해했든 그에게도 양심이 있다면 그 속죄물의 희생을 보며 조금은 뉘우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는 땅 가나안은 죄로 인해 더러워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죄가 있든 그 죄를 그들 중에서 제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 죄가 있든 없든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면 그런 죄는 계속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규례를 통해 그들이 죄를 경계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속죄하면 그 죄의 심각성을 모두가 각성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포로와의 결혼에 대해서(10~14절). 11절을 보시면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고대 사회에서 전쟁포로는 정복자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노예들은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심각한 학대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성적인 노예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를 포로와 노예로 생각하지 말고, 정식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절차를 가짐으로 부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종으로 대우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보다 아주 높았던 겁니다.
셋째는 일부다처의 자녀를 편애하지 말라(15~17절). 역시 고대사회 속에 흔히 있었던 일들입니다. 남편에게 미움을 받던 부인의 자식이 장자일 경우 그 장자권은 변경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넷째는 패역한 아들을 징계하라(18~21절). 만약 완악하고 패역해서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술취함과 방탕함을 따르는 아들이 있을 경우 그 부모가 그를 데리고 성읍의 장로들에게 가면, 그 마을의 재판을 통해 그 아들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너무 끔찍한 일 아닙니까? 21절을 보시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사형당할 만큼 죄가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역시 죄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이것 역시 축복의 땅에서 악을 제거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불효 역시 복을 망치는 일인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나무에 매달아 처형한 시체는 그 날에 장사하라(22~23절). 그 이유를 23절에서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처형된 시체를 밤새도록 매달아 놓는 것도 축복의 땅을 더럽히는 일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일을 금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 생활과는 다른 문화와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을 죄로 인해서 망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공들인 우리의 인생의 탑을 허무는 역할을 합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은혜들을 망치는 주범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더럽혀지고, 망가지는 일은 없습니까? 우리가 피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