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1~13>
하나님께서 저에게 처음 교회 개척에 대한 부르심(calling)를 주셨을 때, 그때까지 교회 개척이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던 저에게 그 부르심(소명)은 부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이 정말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맞는지 기도하면서 묻고 또 묻고, 금식하면서 주의 뜻을 구하고 또 구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제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확신을 주셨고, 내적 확신, 영적 확신 그리고 여러 상황들을 통한 확신으로 저를 이끌어 가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소명을 주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언제 어디에 어떻게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기도로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르심이 제가 한 번도 가 본적도 없고, 아무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었던 필리핀 세부에 한인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3일부터 영적인 불모지와 같은 이 땅에서 눈물의 교회 개척기를 써가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5년 4개월의 시간이 흘러 오늘의 우리교회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겁니다.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교회의 모습이지만, 그러나 우리 교회를 통해 교민사회와 이 땅의 영적 기류가 점점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 성도의 불신자 남편 한 분이(아직 교회도 안 나오시는 분이면서) ‘광명교회가 교민사회에 크고 좋은 역할을 하는 거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와 우리교회의 소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도시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소명(calling)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과 일이 사실 나의 플랜하고는 다를 수 있습니다. 또 누구나 다 편하고 보장된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주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일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요나 선지자처럼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에는 사명이 주어지고, 그 소명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인내, 참아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이 서신을 보내기 전 로마의 네로 황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원형경기장의 검투사와 사자의 밥으로 던져 죽였습니다. 로마 제국 곳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과 박해를 받아야 했고, 전도자와 사도와 성경교사로 부름 받은 바울 사도 역시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 디모데 역시 두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과 2절을 보시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라고 말하면서 ‘소명을 받은 자는 은혜 안에서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명에 따라 복음의 말씀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전하는 사명을 멈추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은유를 들고 있는데, 3절에서 6절에서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군사로 모집된 자, 운동선수 그리고 농부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군사훈련을 받고 생명을 걸고 전투에 참여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운동선수가 심장이 터질 정도로 트레이닝을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은퇴하고 귀농해서 농사나 지어야지 하지만, 사실 농사짓는 일은 아무나 할 정도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허리가 끊어질 거 같은 수고와 땀이 없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들에게 ‘인내, 참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태도인 것입니다. 인내 없이 어떤 좋은 결과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12절에서도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위의 두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모든 것을 참음은” 그리고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는 것입니다.
소명은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 뜻과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명에는 인내(참아내는 것)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 뒤에는 영광과 풍성한 결실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소명을 주셨나요? 나를 통해 어떤 결실들이 맺어지길 원하실까요? 나는 나에게 소명을 맞추는 삶이 아니라 그 소명에 나를 맞추는 삶을 살고 있나요? 내가 소명을 다하기 위해 참아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