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1~9>
2015년(4월30일) 중앙일보 의하면 불황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서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의하면 20‧30세대 498명을 대상으로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 희망, 꿈 중에 하나라도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85.9%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3포세대’, ‘5포세대’에 이어 이제는 ‘7포세대’까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포기할 수 있는 것 1위가 결혼(38.6%), 2위가 출산(33.2%), 3위가 내집마련(28.7%)… 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런 청년들의 사회적 문제는 장차 국가의 장래가 걸려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겁니다. 앞으로 10년 뒤부터는 ‘인구절벽’으로 불리는 국가의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사회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공약들을 내놓았습니다.
현 대통령의 공약 중에 하나도 신혼부부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행복주택’이라고 하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신혼부부를 대통령이 방문해서 격려하는 뉴스를 잠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온다니깐 이 신혼부부가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겁니다. 대통령이 신혼부부가 사는 그 비좁은 임대주택에 온다하니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래서 미디어에서도 앞 다퉈 뉴스로 만들어 올린 겁니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는 이마다 훈훈한 마음에 대통령을 얼마나 칭찬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이 땅의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4절에서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이 땅의 어느 왕과 어느 나라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고, 그 영광은 하늘 저 끝보다도 더 높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영광의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5절과 6절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간혹 권세 있는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서민 코스프래 같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신 분이시지만,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고 천지를 살펴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6절과 8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증언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하나님의 관심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7절~9절에서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고대 사회에서 지금처럼 어떤 복지정책과 제도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자는 누구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결핍한 자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출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시 사회에서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의 슬픔과 고통은 얼마나 컸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립니다.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라는 의미와 같이 이 시편은 “이제부터 영원까지(2절)”,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3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데, 왜냐하면 그 분은 이 세상 어떤 이들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4절~5절). 또 그 분은 자신을 스스로 낮추셔서 고통과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6~9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보진영에서 나온 대통령의 경우는 국민들과 조금은 가까워 보이고, 보수진영에서 나온 대통령은 조금은 권위적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권위적인 대통령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 지도자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요즘은 친서민적 성향의 대통령 지지도가 꽤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칭찬하는 국민이 많은 듯합니다.
‘칭찬(praise)’이란 말이 ‘찬양’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지금도 고통과 아픔과 슬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 주님의 눈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셔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찾아가시는 그 분은 오늘 내 삶의 아픔 속에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구원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 분을 찬양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