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누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가?”

<사도행전 10:1~23> 

– Acts(30) –

 

 

며칠 전 우리 집사님 중 한 분이 한국을 다녀오셨는데, 오셔서 한국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간증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집사님의 말씀에 요즘은 하나님께서 즉시즉시 인도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그러신다는 겁니다. 한국 가 계신 1~2주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성령 충만해져 오셨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집사님이 작년에 우리교회에 등록하셔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여기서 은혜를 받으시더니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듣고 싶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이라도 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셨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회도 시작하셨는데, 그 때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5분만 기도하면 더 기도할게 없어요.’ 그러셨던 분이 지금은 기도시간도 길어지셨고, 낮에도 종종 성전을 찾아와 기도하고 가시는 기도자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셔서 ‘얘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거라. 거기에 투자하면 쪽박 차게 될테니 여기에 투자하거라…’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음성도 들리지 않으니 때로 답답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도 할 겁니다.

우리 집사님 중 또 다른 한 분이 지난 11월에 진행된 다니엘 기도회에서 은혜를 정말 많이 받으셨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오셔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돌아가셨는데, 강사로 서신 간증자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뭔가를 말씀하셔서 이래저래 하셨다’는 간증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님도 사모함이 생기신 겁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듣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예배가 맞춰지고 개인 기도시간에 정말 간절히 그 음성 듣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서 ‘차~’하는 세미한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뭔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거 같다고 생각되어서, 더 간절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조금 더 크게 ‘차~’하고 또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깐, 다른 집사님이 집에 가려고 주차장에 나와 보니깐 우리 집사님 차가 막고 있어서 못 나가니깐, 초등학생 어린 아들을 올려 보내서 차를 좀 빼달라고 시키신 겁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보니깐 집사님이 기도하고 계시니 쑥스러워서 ‘집사님, 차 빼주세요!’하고 씩씩하고 얘기 못하고, 기도하는 집사님 옆에 와서 ‘차~’라고 했던 겁니다.

사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실제로 들리는 일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몇몇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거나, 환상을 보여주시거나, 꿈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없는 게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 말씀을 보시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는 겁니다. 이 성경에는 구원을 얻는 복음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말씀들이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말씀들을 특별하게 주시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14:26절 말씀을 보시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깨우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때문에 실제적으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이미 성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합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잊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무지를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할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분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는 간증을 하시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실제적인 음성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신 것으로 이해하시는 게 맞습니다. 저 역시도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러 저러한 감동과 지시를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확신이 생기면 계산하지 않고 바로 순종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오늘 본문에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서 이스라엘의 가이사랴 지방의 방위와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고넬료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런데 로마의 군대 장교였던 고넬료가 여호와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해서 그가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온 집안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가난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또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이어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주변의 모든 유대인들도 그를 칭찬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 분을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분을 존중한다는 겁니다.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분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무섭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거처럼 생활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자기 욕심대로, 이기적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고넬료를 소개하고 있는 표현들을 보면, ‘그는 경건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항상 기도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27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진정한 경건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는 우리가 늘 생각하고 있듯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차원의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그 분을 잘 섬기는 경건은 안으로는 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지만, 밖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찌하든지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경건이란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경건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인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는 고넬료가 정기적을 기도하던 시간에 환상을 보게됩니다. 천사가 그가 기도하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고넬료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천사가 뭐라고 합니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도 하지만, 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돕고 섬기는 그 모습을 주님께서 주목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만 경건하고 거룩한 것은 경건이 미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건과 주님을 경외함의 완성은 우리가 세상에 나갔을 때,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천되어짐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친구에게, 교우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천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석유 왕 ‘데이비드 록펠러’ 다음으로 역사상 가장 큰 두 번째 부자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인생의 전기는 재산을 증대하기 위해 있고, 인생의 후기는 재산을 나눠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는 이 말대로 죽기 전 18년 동안 자선사업에만 몰두했습니다. 전 세계에 2500개 이상의 도서관을 지었고, 12개 종합대학과 12개 단과대학을 지어 사회에 환원하고,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도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의 90%에 이르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하는 모습을 주목하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할 지를 잘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것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마시고,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실천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

고넬료의 환상 중에 천사는 그에게 어떤 지시를 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시면,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서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집에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고넬료는 즉시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급히 욥바로 보내게 됩니다.

다음 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특별한 환상이 보이는 겁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한 커다란 보자기 같은 게 내려오는데 네 귀는 줄 같은 것에 매달려 베드로 앞에 내려오는 겁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보시면,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지 말아야 할 부정한 짐승이나 곤충이나 조류 같은 것들을 열거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그런 음식들을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유대교인들이나, 안식교인들은 그런 것들을 철저히 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하시는 겁니다. 이건 전통적인 유대인들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부정한 짐승들은 입에 댄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유대인들에게 있어 큰 죄를 짓는 것과 같았던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4절에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먹으라 하는데,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5절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게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는 ‘안 먹겠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먹으라’ 하는 이 일이 세 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이 환상을 처음 봤을 때 베드로는 그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나중에 이방인인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집에 가서야 그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이방인들까지도 거룩하게 하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구원의 자녀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이런 사고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순종하기는 너무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먹어라 하는데, 베드로는 안 먹겠다고 그런 실랑이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는 겁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넬료처럼, 베드로처럼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일 겁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 안 되니깐 순종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분의 말씀을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 생각과 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을 읽다가 당시 카톨릭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교황교황청을 향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대학 교수 자리에서도 쫓겨날 것이고, 어쩌면 이단자로 사형이나 화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는 순종하기로 했고,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점을 나열한 95개의 반박문베텐베르크 성당의 정문에 게시하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루터가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된 신자는 ‘왜’라는 의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의문 없이 순종하는 사람이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루터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하지 않았으면 종교개혁자 루터도 없었고,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는 개신교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했더니 하나님은 그 순종하는 성도 한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하지 않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도, 기적도, 간증거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든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넬료도, 베드로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절에서 그에게 환상이 보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앞부분에서 말씀 드렸지만, 유진 피터슨은 이 부분을 ‘주목하셨다’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구제활동 했던 것도 주목하셨지만, 언제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주목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그가 기도할 때도 그를 주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을 보시면,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역시 기도 중에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고넬료도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는 기도 중에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 역시 기도 중에 개척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그 개척지가 필리핀 세부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이 장소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고, 지금까지도 모든 순간순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으로, 판단과 결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기도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이제 기도자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이 엠 바운즈(Edward M. Bounds, 1835~1913)’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에게 첫 번째 자리를 주면 승리는 보장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제일 앞자리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인생의 맨 앞에서 그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새벽기도, 새벽제단을 다시 쌓으십시오. 일주일 내내 못하시면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도전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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