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11~21>
어제 중앙일보에 기가 막힌 기사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작년 12월 29일에 우모(38세)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의 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직장을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있는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 A씨는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하라”며 꾸짖었습니다. 우씨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어머니와 언쟁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뺨을 두 대 때린 겁니다. 격분한 아들은 나무의자를 들어 어머니를 수차례 가격하고, 어머니가 바닥에 쓰러지자 흉기까지 휘둘렀습니다.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보고 놀란 우씨는 그대로 도망가려고 했는데, 죽어가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고 현장에서 도망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씨는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은 후 피 흘리며 죽어가던 어머니에게 어떤 구호조치도 없이 그대로 도망간 겁니다. 법원은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을 찌른 아들을 걱정하는 비극적인 모정을 뒤로하고 패륜을 저지른 우모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는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온전한 사랑이 부모의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니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찌른 자식을 걱정하면서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절 말씀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런데 그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은 그 사랑하는 아들을 화목 제물로 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있어 아들은 가장 귀하고, 가장 큰 사랑의 대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고 대신 구할 정도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도 아니고, 그 보다 더 큰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기까지 하는 사랑도 아니지만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이 구절에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한다(13, 15, 16절)”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믿는 형제들 안에도 역시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도 그 형제가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그것은 곧 그 형제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마땅히 그 분 안에 있는 그 형제를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리고 20절 말씀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안에는 그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욥기를 보면 욥이란 사람은 동방의 의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욥은 인생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모든 재산을 다 잃었고, 두 번째로 자식들을 다 잃었고, 고치지 못할 심한 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 보다 큰 고통은 그를 위로하러 왔다고 했던 친구들로부터 도리어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시험이며,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뇌일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죄인 되고, 원수 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용납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인 형제를 사랑함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루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는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