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42>
반세기 전만해도 아시아에서 일본다음으로 두 번째로 잘살던 나라 필리핀은 지금 후진국 대열에 끼어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치안은 불안하고, 여기 저기 범죄자들과 마약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해 있고,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는 무슬림 반정부군들이 시시 때때로 민다나오 독립을 위해 게릴라 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2년 6개월 전에 선택한 사람이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Roa Duterte, 1945~)’ 필리핀 16대 대통령입니다. 검사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정계에 입문해 다바오 시장에 당선되어 약 20년간 연임하고, 무법 천지였던 다바오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도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부정부패 범죄율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힘입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사범 5천여 명이 즉결 처형되기도 하고, 마약 용의자 16만4천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또한 부정부패 공무원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죽일 것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또한 민다나오의 반군들을 척결하기 위해 수시로 계엄령을 내려 50년 내전을 종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두테르테를 향한 인권단체의 거센 비난이 있지만, 심각하게 부패하고 망가진 필리핀의 경우 이런 과격한 방법이 아니면 회생 불가능하다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국민들의 두테르테를 향한 지지도는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오늘 본문에 다다르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과격하기 때문입니다.
34절에서 36절에 보시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예수님께서 화평을 주러 오신 게 아니고 오히려 불화하게 하려 오셨다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족들과 불화하게 하려하시다니요? 그런데 로마서 12:18절에서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제자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한 가족 중에 믿는 자가 나올 수 있는데, 부모든, 형제든 또 다른 가족 중 누군가는 그 복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믿는 가족을 박해하고 핍박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을 원수로 생각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족과 투쟁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는 자가 박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더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38절,39절).
37절, 38절 말씀을 보시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을 이해할 때, 가족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5:8절 말씀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가족들로부터 복음을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박해와 핍박이 오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제자의 길은 결코 넓고 편한 길이 아닌 좁고 불편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련이 온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게 될 것이고,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게 될 것이며, 전도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40~42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전도대로 파송되는 제자들의 길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 순간순간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과격(過激)’이란 말은 ‘지날 과(過)’자에 ‘흐를 격(激)’자를 쓰고 있습니다. ‘넘쳐흐른다. 지나치다’는 의미입니다. 넘쳐흐르지 않으면 결코 주변을 살릴 수 없습니다. 복음 속에 이런 과격함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고 따르되, 이 과격한 복음의 정신을 기억하고 따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