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22> “예수의 세대(1)”
– Acts(38) –
지금 보시는 사진 속 주인공들인 이 두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독일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대단히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한 사람은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입니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과 특별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서른 두 살의 나이에 2천 명 앞에서 연설을 하고, 그가 속한 ‘독일 노동자당(Deutsche Arbeiter Partei, DAP)’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데, ‘나치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나치즘은 우수한 인종인 독일의 아리안(게르만인)이 다른 모든 열등한 인종의 주인이란 개념이 있고, 공격 받고 있는 아리아 인종의 순수 혈통과 타고난 재능을 다른 인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비롯한 집시나 육체적 및 정신적 장애인을 박멸해야한다고 했고, 독일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제국주의를 내세웠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독일인들의 지지를 힘입어 독일의 총통이 되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이 때 발발한 세계대전을 통해 전사자가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3,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홀로코스트(Holocaust)’라 불리는 나치의 유태인 인종청소는 약 6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1백만 명이 어린아이였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유태인 9백만 명 중에 2/3에 해당하는 인원이었고, 그 6백만 명 중에 상당수는 폴란드에 살고 있었기에, 가장 극심한 피해를 폴란드가 당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폴란드인들은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일본을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한 분노와 미움을 갖고 독일인을 대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진의 한 노신사는 지금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 분은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독일의 제4대 연방총리로 재임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서독 총리입니다.
그는 총리가 된 후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기 위해 수십년이 지난 일이지만, 2차 세계 대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었던 폴란드의 바르샤바 전쟁 희생자를 묘역에 들어가 참배하게 됩니다. 국립묘지 주변에는 이미 많은 폴란드 국민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들고 전범국 독일을 비판하며, 총리를 향해 거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수많은 취재진이 취재하고 있는 가운데 빌리 브란트 총리는 위령탑 앞에 꽃을 헌화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서 잠시 묵념을 하는가 싶더니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 유대인들에게 올리는 진심 어린 사죄였던 것입니다. 12월 초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오랫동안 사죄하는 마음으로 앉아 흐느꼈다고 합니다. 당시 헝가리 뉴스 캐스터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더더구나 브란트 총리는 젊은 시절 나치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박해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하고, 나치독일은 그의 독일국적을 박탈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독일 총리로서, 눈물로 사죄했던 것입니다.
당시 폴란드의 총리는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생존자였는데, 이 일 후에 다음 행선지로 가는 차 안에서 독일 총리 브란트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전범국이었던 독일에 대한 증오심과 선입견이 바뀌기 시작했고, 폴란드인들 중에 75%는 독일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사죄의 표현을 하는데 그 이유가 “사과는 피해자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이뤄져야 한다”라고 합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보다 거의 한 세대 후인 25년 늦게 태어났습니다. 한 세대 위의 히틀러 세대는 독일과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갔다면, 그 다음 세대의 브란트 세대는 화해와 용서와 치유와 평화 그리고 나아가 독일의 통일을 앞당기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파괴와 파멸의 세대가 될 수도 있고, 화해와 용서와 치유와 평화 그리고 축복의 세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1. 사울 : 불순종의 세대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섬에서 그곳의 총독을 전도한 후 배를 타고 지금의 터키지방의 ‘버가’를 들러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때마침 안식일에 그들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 들어가 앉게 되고, 회당장들로 부터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17절, 18절 말씀을 보시면,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애굽에서 수백년 동안 노예로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내셨다는 사실과 그들은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40년간 이스라엘들의 소행을 참으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22절에서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그들은 엄청난 기적들을 목격했습니다. 강퍅한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노예들을 보내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완고한 마음을 꺾으려면 보통의 기적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도, 어떤 마술사도 흉내조차 낼 수도 없는 놀라운 기적들을 통해 바로 왕의 마음을 꺾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참 잘 안 바뀝니다. 얼마나 자기 고집이 센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고집이 하나님 앞에서 꺾어지려면 보통 충격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겁니다. 정말 강력한 충격이 왔을 때 비로소 조금 머리를 숙이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사람이 갑자기 심장에 문제가 있어 정지했을 때,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사람은 그냥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 때 강력한 전기 충격기를 통해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겁니다. 그러면 심장 박동이 다시 돌아오고, 산소가 다시 공급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조차 말을 안 듣는 경우는 더 이상 소망이 없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주님께서 종종 ‘너 이래도 말 안 들을래? 너 이래도 순종 안할래? 너 그러다 죽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메시지가 들릴 때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메시지조차 안 들리고, 그냥 악에 바쳐 있는 사람, 자기 고집 안 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충격 요법도 들어먹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그럼 그런 사람은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겁니다.
애굽의 바로 왕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 였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장자진멸재앙이 왔을 때, 바로 왕은 두 손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왕은 모든 병거와 마병을 동원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았습니다. 이게 참 잘 안 변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게 하셨고, 다시 홍해를 닫아 불순종하던 애굽의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무사히 출애굽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하늘의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생수를 얻어 마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낮의 해와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출애굽 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에도 못 들어가고, 40년 간 광야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풍요와 축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뉴스 중에 하나가 C신문사(K호텔) 사주 일가의 패륜적인 모습입니다. 뉴스를 보면서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남편과 네 명의 자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한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그 내용을 보면 ‘많은 재산이 저 자식들을 괴물로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그런 사람들에게 풍요와 축복이 복이 되겠습니까? 저주가 되겠습니까?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결코 좋아지거나, 변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실 ‘광야’가 필요하고, 그 광야가 오히려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가난해지고,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비로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의 광야 생활 속에서도 불평과 원망과 불신앙의 습관들을 버리지 못해, 그들은 가나안의 축복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망했었던 것입니다.
19절, 20절을 보시면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그 후손들을 들여보내셨습니다. 여기서의 450년은 학자마다 여러 가지 약간씩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과 가나안 정복시대와 사사시대 그리고 다윗 왕이 세워질 때까지로 보셔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2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두기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위에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왕이 될 만한 인물이었던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 역시 40년간 다스려 보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왕에게도 40년이란 시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40년 이란 시간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40이란 시간은 완전수를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릴 만큼 오래 참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사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왕으로 세워질 때만 해도 그는 정말 누구보다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변했습니다. 그에게 많은 재물이 생기고, 권세가 생기고, 힘이 생기니… 그의 믿음은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있다면 더 겸손하고 낮아져 주님을 더 잘 섬겨야 하는데, 오히려 믿음이 떨어지고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위에서 폐하셨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불순종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50년간 불순종의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450년을 참으셨다면 얼마나 오래 참으신 것입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이 없이 그의 약속을 요구할 수는 없다.” – Henry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데, 어떻게 성경 속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순종의 세대에게 하나님의 복은 없습니다. 불순종의 세대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실 겁니다.
2. 다윗 : 주님의 마음에 맞는 세대
사울 왕과 같은 불순종의 세대와 다른 세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 : 주님의 마음에 맞는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성경에서 대조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22절 말씀을 보시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다가 또는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도저히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불순종하게 되면, 주님께서는 그를 폐하시고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런 성경의 흐름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셨는데,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향해 오래 참으시면서 기다려 주시는데, 계속 불순종하고 또 불순종하고 있으면 주님께서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기회의 촛대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필리핀에서 이곳 현지 직원들을 고용해서 일하셔야 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필리핀의 장점 중에 하나가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에서야 드라이버 고용하고 지내는 분은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의 사장이나 회장 정도 되어야 고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집에서 일 해주는 도우미를 두는 사람도 월급쟁이들은 계산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큰 돈 들이지 않고서도 그게 가능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이 고용한 분들이 여러분이 말하지 않아도 딱딱 알아서 일 해주는, 그래서 그 분들께 드리는 월급이 정말 조금도 아깝지 않은, 아니 더 많이 올려주고서라도 꼭 붙들고 싶을 정도로 정말 여러분의 마음에 딱 맞는 그런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아마, 시킨 일이라도 제대로 하고, 물건이라도 제 자리에만 잘 갖다 놓기만 해도 고맙다 할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하고 계속 같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하나?…’ 이런 걸 걱정하는 분이 꽤 되실 겁니다. 물론, 이건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정말 여러분의 마음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情)이 많은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주님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생각했고,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 있고, 감정적으로 반응해야 할 일도 있고, 자기 생각도 있었지만… 그는 자기 생각도 내려놓고, 자기감정도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는 것도 내려놓았습니다. 그에게 절대적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런 사람을 붙드시고, 그런 사람을 형통케 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런 사람에게 능력을 부어주셔서 그를 통해 일하시고 싶은 것입니다.
이 자료는 한국은행에서 2016년 기준 [남북 경제지표 비교] 그래프입니다.
이 그래프에 보시면, 명목상 GNI(국민총소득)이 남한은 1,639조1천억 원인데 비해, 북한은 36조4천억 원입니다. 단위 자체가 비교가 안 됩니다.
무역총액도 우리는 9천억 달러 대인데 비해, 북한은 65억 달러 대입니다.
철광석 생산량은 북한이 월등히 많고, 남한은 정말 수치가 낮습니다. 그러니깐 이건 북한이 지하자원이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이 많다는 얘기고, 그건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 남한은 지하자원이 적은 게 아니라 그냥 없는 정도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생산량 보시면, 남한은 420만대를 넘게 생산해 내고 있는데, 북한은 4천대 정도입니다. 북한이 우리보다 면적이 훨씬 넓은데도 불구하고 도로 길이가 우리는 10만8천km이상인데, 북한은 2만6천km 밖에 안 되는 겁니다.
남북한이 경제력 차이가 아주 크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았었습니다. 남한은 농사나 짓는 곳이었고, 모든 공장들과 생산시설 그리고 지하자원들은 모두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력 자체가 비교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북분단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왜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모양이 되어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 건가요?
2019년 1월 오픈도어 선교회 발표에 의하면 [2019 기독교 박해 국가]에서 북한은 18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박해하는 나라가 18년 째 북한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를 박해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도록 하고, 그렇게 주의 이름을 훼방하는데 이 나라가 잘 될 수가 있겠습니까? 100년도 안돼서 반세기 만에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도 이런데, 어떤 개인이 주님의 이름을 훼방하거나, 믿는 자들을 핍박하거나, 교회를 분열하려 하거나, 주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그런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 마음에 쏙 들어 하시겠습니까?
우리 남한은 반세기 전 전쟁의 폐허 위에서 지하자원도 하나도 없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신앙의 자유 속에 교회의 비약적 성장이 있었던 겁니다. 천막만 쳐 놓아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눈물로 부르짖는 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님의 마음에 맞았던 이 남한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만 맞으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 모든 뜻을 다 이루길 원하십니다. 우릴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우릴 통해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마음에 맞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다윗같이 위대하게 쓰임 받는 이들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에 맞기를 힘쓰다가… 어느 날 보니 그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게 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불순종의 세대가 아니라 다윗과 같은 순종의 세대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에 맞는 세대, 주님이 기뻐하시는 세대, 주님께서 기꺼이 복을 내리시는 세대, 주님께서 쓰시길 원하는 그런 세대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갖고 있는 그 생각들, 그 계획들 그리고 하시는 말들, 태도와 행동들… 과연 주님의 마음에 맞을 거 같습니까?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그런 마음과 태도들인 거 같습니까? 사울과 같은 불순종의 세대가 아니라, 다윗과 같은 주님의 마음에 맞는 세대로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