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1:1~2:7>
이번 주간은 솔로몬이 기록한 ‘아가서(雅歌書)’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아가서는 ‘우아할 아(雅)’자에 ‘노래 가(歌)’자를 쓰고 있어서, ‘우아한 노래,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이고, 영어로는 ‘Song of Songs(노래들 중의 노래, 최고의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노래로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깊은 사랑을 통해 하나님(그리스도)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교회)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가장 큰 절기였던 유월절에 이 아가서를 읽었다고 합니다.
술람미는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져 있었던 포도원이 많았던 어떤 시골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수넴’이란 지역과 동일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6절에 보시면,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술람미 여인은 피부가 검게 그을린 시골 아가씨였습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녀의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남편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에 있었던 아들들이 새어머니에게 딸려온 딸인 이 아가씨를 미워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포도원지기로 삼았고, 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포도원을 돌보던 그녀의 피부가 검게 그을렸다는 겁니다. 때문에 자신의 피부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피부가 검게 그을렸고, 시골에서 포도원지기를 하고 있는 비천한 신분이었기에 5절의 예루살렘의 딸들(도시의 아가씨들 혹은 왕궁에 있었던 궁녀들)은 그녀를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일하던 포도원에 솔로몬 왕이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때까지 정치와 외교적인 목적으로 주변의 부족과 나라들의 공주들과 정략적 결혼을 해서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포도원에서 만난 여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비록 가정사가 복잡하고, 검게 그을린 비천한 포도원지기라는 것은 솔로몬에게 상관없었습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예루살렘의 딸들은 그녀를 비천하고 촌스럽다 하여 업신여겼을 지라도 솔로몬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 역시 솔로몬의 진실한 사랑에 반응합니다.
13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그리고 2장 3절에서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또한 2장 5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여인이 솔로몬을 향한 사랑의 깊이가 매우 깊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고,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강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와 상황이 커 보이는 것뿐입니다. 사랑한다면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왕의 입맞춤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입맞춤이란 것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겠습니까?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의 크기만큼,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의 크기만큼, 그를 사모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그 입맞춤은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사랑하는 남녀의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손을 잡고 싶고, 포옹하고 싶고, 사랑하는 이의 입맞춤을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의 사랑만큼 강렬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서론에서 말씀드렸지만 여기서의 왕은 하나님(그리스도)을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 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술람미 여인과 같이 주의 백성 된 우리들은 주님의 입맞춤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그 주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 임하시기를 사모하십니까? 그가 내게 오셔서 나를 어루만지시고, 내 귀에 말씀하시고, 내 손을 잡으시고, 나를 안으시고, 입맞추시는 영적 은혜를 사모하십니까? 주의 신부된 주의 교회와 성도들이 날마다 주님을 향한 깊은 사모함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