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복음 수혜자”

<사도행전 17:1~15> 

– Acts(49) –

 

 

어제 새벽에 우리 남자 성도님들과 바이크선교회 모임을 했었는데, 어쩌다 미국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우리 집사님이 미국은 참 복 받은 나란 거 같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를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미국은 1783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하지만 8년간의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미국의 독립 당시의 미국의 영토는 미 대륙의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있었고, 지금 미국의 영토의 1/4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미 대륙은 그 때까지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그 땅을 넘겨받기도 하고, 프랑스와 스페인과 멕시코로부터 헐값에 사들이거나, 합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이런 부동산 매매에 있어서 초대박을 터뜨린 최고의 거래는 1867년 러시아로부터 얼음의 땅 알레스카(한반도의 8배 크기)를 720만 달러(약 80억원 / 현, 2조원정도)라는 헐값에 사들인 사건입니다.

러시아는 지난 100년 동안 알레스카에서 모피를 얻었는데, 너무 남획하다 보니 모피를 만들어내는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했고, 그 얼음의 땅 알레스카에서는 예전처럼 모피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 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생각했던 알레스카를 헐값으로 미국에 팔아넘긴 겁니다. 러시아는 골치 아픈 얼음의 땅을 잘 팔아치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미국에서도 “우리한테 왜 이렇게 큰 얼음 박스가 필요한 거냐?”라고 말하며 정부를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그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30년 뒤에 금광이 발견되고, 석탄과 철광석 등이 발견되고, 1968년에는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가 발견되면서 미국은 세계 석유매장량 3위로 올라서게 됩니다. 또한 냉전시대 알레스카에 미사일을 배치해 당시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던 군사적 요충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처럼 보였던 부동산 거래는 세계에서 가장 초대박을 터뜨린 부동산 거래로 역사 속에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GDP의 2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고, 세계의 정치, 경제, 교육, 의료, 문화, 예술, 체육… 등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주도적인 나라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독립 후 250년 밖에 안 된 나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쓸모없는 땅이라고 해서 헐값으로 소유했던 땅을 미국에 팔아버렸고, 현재 미국은 수백, 수천 배의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1. 축복은 받은 자의 것이다

 

 

바울 사도는 2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루디아 등의 여러 사람들을 전도해서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심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옥에서 나와 새롭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인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위로하고 또 다른 도시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을 살펴보면 새롭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를 돌보게 하기 위해 바울 전도단 일원이었던 의사 누가를 그곳에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 1절 말씀을 보시면,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과 실라가 도착한 곳은 빌립보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도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고,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들어가서 구약성경을 강론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오래 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메시야(그리스도)가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임을 증거 하게 됩니다.

 

4절을 보시면,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바울의 복음을 들은 헬라인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과 상류층의 귀부인들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역사가 바울 일행의 전도활동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바울 사도가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구약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구보다 복음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지역의 유대인들이 믿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겁니다.

 

로마서 9장 4절을 보시면,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유대인들의 조상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주어졌고,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9장 5절을 보시면,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구약 성경의 모든 역사가 어떤 민족의 이야기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배경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종들, 왕들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메시야)께서 유대인 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의 후손 중에 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특별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바울 사도 역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지만, 그는 어떤 지역을 들어가든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그 복음의 첫 번째 기회를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었던 그 메시야, 유대인들이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 라는 복음을 유대인들은 바울로부터 먼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면,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4절에서는 데살로니가의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는 장면인데, 먼저 복음을 전해들은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거부하고 도리어 바울을 향한 시기심이 가득하여 불량한 사람들을 동원해 떼를 지어 바울 일행을 붙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피신한 바울 일행을 붙잡지 못하니깐 예수를 믿은 형제들을 그 지방의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은 국가를 전복하려고 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를 대적하여 다른 왕 예수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로마 정부에 반역을 꾀한다’고 거짓으로 고소해 그리스도인들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을 이방인들보다 먼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대적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복음을 먼저 들을 수 있는 우선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 다음에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복음을 받아드립니다.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설교 서론에서 잠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알레스카라는 땅이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먼저는 그들에게 우선권이 있었고, 그들은 그 축복의 땅을 가꾸고 관리해서 그 엄청난 축복을 누릴 우선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헐값에 미국에 팔아넘겨 버린 겁니다. 그 축복을 걷어찬 겁니다. 그 축복의 크기를 보지 못했던 겁니다. 러시아 정부의 재정적 어려움, 그 순간의 힘겨움을 해결하려고 미국으로부터 얼마의 돈과 그 천혜의 땅을 바꿔먹어 버린 겁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축복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은 받은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데,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르고 그것을 걷어차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이 축복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 주어진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가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축복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걷어차 버렸지만, 데살로니가에 있는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축복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매주 온 정성을 다 쏟아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준비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말씀의 주인공이 여기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말씀을 자기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으로 받고, 그 인생이 바뀌고, 그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매주 기도합니다. ‘오늘 이 한 번의 예배가 이곳에 우연히 정말 잠시 들렸던 여행객에게 그리고 어학연수 왔던 유학생에게도 그의 평생을 바꿀 놀라운 비전과 믿음의 말씀을 받게 되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매주 저는 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만약 매주 이 축복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데, 우리 성도들이 그 축복을 받지 않으면 어쩌다 한 번 들린 방문객이 그 축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주 마다 떨어지는 말씀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으로 받고, 아멘하고,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앞에 매주 전하지만, 이 말씀을 모두가 아멘하며 받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만약 어떤 분이 ‘목사님 오늘 왜 저런 말씀을 하시냐?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이러고 있으면, 그 분만 손해인 겁니다. 제 설교 방식이나 스타일이 좀 마음에 안 들어도, 때로는 내용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설교자를 통해 전해지는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걸 내 말씀으로 받으면 되는 겁니다. 설교자의 말이 아닌, 설교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축복을 내 것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성경 속에 있는 모든 축복의 말씀들이 우리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그 모든 언약의 말씀들은 예수 안에서 예가 되고, 우리는 그 말씀에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설교하고 있는 이 순간에 한 입에서 두 가지 말이 나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이들에게는 복이 되겠지만, 남들이 그렇게 아멘하여 축복의 길로 들어서고 있을 때, 혼자만 딴 생각하고 유대인들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것처럼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내게 주어진 축복이 축복인 줄도 모르고 그것을 멸시하고 대적하다가 망하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축복은 받은 자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축복과 복음은 계속 이 자리에서도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하는 분들이 그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2. 좋은 밭이 열매를 맺는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은 밤에 바울과 실라를 빼돌려 베뢰아 지역으로 보내게 됩니다. 바울 일행은 거기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11절 말씀을 보시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베뢰아에 살던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들은 복음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고, 또 말씀을 너무나도 사모하는 마음 밭이 참 좋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때문에 바울의 복음은 순조롭게 전해졌고, 그 복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많이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지난 3월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입니다. 어떤 분이 2013년 전 재산 7억 원을 주고 땅을 샀답니다. 그리고 그 넓은 땅에다 농사를 지으려고 이것저것 심어 보는데, 심는 것마다 다 시들어 버리고 농사가 안 되는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땅 주인이 포크레인을 불러다 땅을 파 봤습니다.

 

 

조금만 파 내려갔더니 땅 속에서 시커먼 온갖 쓰레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조금 더 파내려 갔더니 쓰레기에서 나온 침전물과 썩은 물과 기름과 프라스틱과 같은 것들이 뒤섞여 나왔습니다. 3.5m를 파고 내려갔더니 그 밑에 비로소 정상적인 흙이 나오더랍니다. 그러니깐 땅 주인은 거기가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것도 모르고 전 재산을 들여 그 땅을 산겁니다. 이런 쓰레기가 매립된 썩은 땅에서는 뭘 심어도 안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무슨 농사가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느 날 씨 뿌리는 사람이 밭에 나가 씨를 뿌렸는데, 그 씨가 떨어진 곳을 보니 네 가지 종류의 밭에 떨어진 겁니다.

– 어떤 씨는 단단한 길가에 떨어져 새가 와서 그 씨를 먹어 버렸습니다.

–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흙이 얕다 보니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자라기도 전에 싹이 말라 버렸습니다.

– 어떤 씨는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햇볕을 가려서 씨가 자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밭에 떨어진 씨는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결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씨의 비유는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의 밭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순간에도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전해지고 있지만,

– 마음을 열지 않고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을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가는 겁니다.

– 또 돌밭과 같은 마음은 믿음의 뿌리가 얕다 보니깐 작은 시험과 고난 앞에서도 믿음으로 견뎌내지 못하는 겁니다.

– 그리고 마음에 가시덤불이 많은 사람은 세상의 여러 가지 염려와 재물에 관한 유혹 때문에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 하지만 좋은 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받을 때에 좋은 마음으로 받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기간이 짧을지라도 믿음이 쑥쑥 자라나는 겁니다. 표정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온유하며, 삶의 변화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들을 머지않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교회 다닌다고 다 변화되고 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의 복음이 떨어질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으십시오. 우리 안에 단단한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하고, 걸러져야 할 돌들이 걸러지고, 우중충한 부정적인 마음들을 버려야 하고 오직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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