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4~21>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21) –
요즘은 손흥민, 이강인 이 두 선수들 때문에 A매치 국가대항전 축구 보는 맛이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1300억의 사나이’로 불리며 이미 세계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선수가 탄생했는지 축구를 보면서도 늘 신기하기만 합니다. 실력이 물오를 대로 올라서 이 선수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선수는 이번 폴란드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준우승의 주역이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받은 바 있는 MVP(골든볼)을 수상한 18세의 이강인 선수입니다. 환상적인 개인기와 플레이로 이번 대회에서 전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고, 현재 한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축구 유망주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성공 뒤에는 이 선수들의 아버지들의 헌신적이고, 혹독한 기본기 훈련이 있었다는 겁니다.
먼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는 축구선수 출신이지만 부상을 입어서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공격수로서 수비 선수 한 명 제낄 발기술이나 개인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늘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들인 어린 손흥민 선수는 철저하게 기본기와 개인기와 체력을 길러주기 위해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6시간씩 직접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축구를 같이 시작한 다른 선수들은 여러 대회에 나가서 우승도 하고, 좋은 학교에 진학도 하고 그렇게 스펙을 쌓아갔는데, 손흥민 선수는 그 때 기본기를 철저하게 훈련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3개월 다니다가 중퇴하고, 독일 유소년 팀에 들어가 축구 선진국에서 훈련했고, 오늘 날의 세계적 선수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강인 선수 같은 경우도 걸음마를 떼자마자 아버지가 운영하던 태권도장에서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고, 그의 아버지는 태권도장 관장이지만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축구천재 마라도나의 영상을 아이한테 보여주고, 매일 30분 줄넘기, 공에 대한 집중력을 길러주려고 야구 30분, 태권도 1시간 그렇게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체력훈련을 철저히 시켰습니다. 그러니 10살 때 체육영재 테스트를 해 봤더니 이미 영재들 중의 0.1%에 해당하고, 그 나이에 대학생들 급의 체력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기본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구사하는 여러 가지 축구 개인기와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겁니다.
그런데 기본기가 얼마나 재미가 없는 건지 모릅니다. 똑같은 반복훈련을 매일 하니 그게 재밌을 리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피아노를 중단하는 이유는 매일 똑같은 거를 계속하니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는 겁니다. 그런데 그 기본기를 철저히 익히지 않으면 미래의 멋진 연주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선수들의 아버지는 그 비밀을 알았던 겁니다. 아들을 향한 큰 그림을 갖고 있으셨던 겁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들보다 기본기와 개인기를 철저하게 훈련했던 것이고, 어린 아들들을 오늘 날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여 지는 그런 성과들, 손에 잡혀지는 것도 없이 그 기본기 훈련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훈련기간을 잘 통과하자 세계 탑클래스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1. 부르심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
아브라함은 지금의 이라크 페르시아 만에서 북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우르(Ur)라는 곳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해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낯선 가나안 땅으로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수년간 어떻게든 그 땅에 정착해 보려 애를 썼지만 가나안 토착민들로 인해서 그 어디에도 쉽게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 여기 저기 목초지를 찾아 떠나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갖고 산지 수년이 지났고, 여러 번의 죽을 고비와 위기도 있었고, 그러는 사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점점 더 들어가는데 아직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셨던 뚜렷한 어떤 증거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늘 말씀으로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다가 이번엔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셔서 하늘의 쏟아질 거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아브라함아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언약의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들도 없고, 육체적인 나이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함이 여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전혀 바뀌어 질 거 같지 않고, 수년 동안 기대하고 기대했던 일들에 대한 실망감만 가득하지만, 또 지금의 육체적인 형편과 같은 것들은 도저히 또 다른 어떤 기대를 갖기 어려운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국 이 싸움입니다. 지금의 상황들, 조건들, 형편들, 내 능력과 배경과 자본과 실력과 같은 것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겁니다. 이런 환경들 때문에 우리는 낙심도 하고, 절망도 하고, 포기도 하는 겁니다. ‘다 끝났다. 나는 글렀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은 현실입니다. 그런 환경에 의하면 불가능한 문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나에게 주어진 이 환경에 집중하면 불가능한 겁니다. 실력이 없는데, 자본이 없는데, 머리가 나쁜데, 재능이 없는데, 배경이 안 따라주는데… 어떻게 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환경들과 조건들을 믿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26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 그렇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가능한 것보다 불가능한 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불가능한 조건들과 환경들 속에서도 여호와를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싸움이고,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그 다음 단계의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환경을 바라보느냐? 이것이 우리가 믿음을 갖고 있느냐? 여전히 믿지 못하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단계를 지나서 가져야 하는 것이 주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동족들이 살고 있었던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아브라함이 서 있는 그 가나안 땅을 주시려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도를 보면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멈췄고, 홍수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각기 지구상에 있는 세 종족(황인, 흑인, 백인)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셈은 아시안이고, 함은 아프리카계를 말하고, 야벳은 유럽계를 말합니다.
지도를 보시면 각 종족들이 모여서 살던 곳이 그들의 거점 지역이 되고, 그것이 오늘 날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이루게 된 겁니다.
그리고 팔레스틴 땅인 가나안은 원래 함의 아들 가나안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곳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종족이 다른 셈 계열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동족들이 살고 있었던 본토를 떠나서 다른 종족들이 살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플랜은 아브라함을 그 땅의 미래의 주인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그 이스라엘에 예루살렘 성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 이스라엘의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가 탄생케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큰 그림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고 했을까요? 원래 그가 살던 고향 땅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다른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던 곳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려 했을까요?
물론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 땅에 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끝까지 회개치 않고, 하나님을 거부했던 가나안 아모리 족속들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교학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이 팔레스틴 땅은 고대로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여기를 통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전파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로마제국 아래에 복음이 사방으로 편만하게 퍼져나갔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이 순간순간 낙심이 될 만한 상황들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의 플랜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여섯 살 때부터 제 부모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정은 산산이 깨졌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정서적으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컸습니다. 물질적으로 심각한 가난을 경험해야 했고, 성격적인 장애도 있었고, 꿈도 비전도 없는 성장기를 보내야만 했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삶을 살았고, 건강도 약해서 몇 차례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 주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처음엔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왜 목회자로 부르셨는지, 자격도 없고, 여러 가지 면에서 능력도 부족한 사람인데 저를 부르신 주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저를 부르신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잘난 사람이면 과연 저를 통해서 위로를 받거나 은혜를 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별로 없겠더라구요.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 너 가정이 깨진 사람들을 위로해라.
– 가정에 아픔이 있는 사람을 위로해라.
– 그 상처 난 자녀들을 위로해라.
– 꿈이 없고 비전이 없던 이들에게 소망을 심어줘라.
– 건강이 약해 죽음의 고비를 넘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라.
– 인생 속에 실패한 이들에게 다시 믿음 안에서 재기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줘라…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믿음으로 변화되면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부르신 주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을 때에는 그 안에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우연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예수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연히 세부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실패 속에도, 여러분의 재능과 성공에도, 여러분 인생의 모든 여정에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크고 원대한 계획이 있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연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에겐 우연은 없습니다. 어떤 축구 선수들의 아버지들에게 그 자녀를 향한 큰 그림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들 향한 하나님의 빅피처가 있음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그 기간에 믿음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인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 중간 의심도 나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언약의 징조를 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기드온이 처음 부름 받았을 때 양털이 젖게 되거나, 마르게 되는 그런 징조를 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히스기야 왕이 병이 치료될 때 해시계가 뒤로 10도 물러나는 그런 징조를 구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도, 기드온도, 히스기야도 그런 징조를 구할 때 ‘왜 믿지 못하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런 징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저 역시도 세부에 한인교회를 개척하고 6개월, 1년 이라는 징표를 구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재정적으로 6개월, 1년을 지나면 많이 어려워질 게 계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유치하지만 ‘6개월엔 12가정이 출석하게 해 주세요. 1년에 교회 월세를 낼 수 있을 만큼의 재정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매일 저녁마다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겠어요? 정말 그대로 이루어주셨고, 그 이상으로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해 나가는데 더 큰 확신 가운데 사역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암소와 암염소, 숫양과 같은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 제물을 준비해서 그 중간을 쪼개는 장면이 나옵니다.
피 냄새를 맡고 솔개가 그 고기를 뜯어 먹으러 사체 위에 내릴 때 아브람은 그것을 쫓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지쳐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언약의 말씀을 다시 반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7절, 18절 상반절 말씀을 보시면,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아브라함이 살던 고대 사회에서 가축을 반으로 자르고 그 사이에 언약의 당사자들이 왔다갔다 하며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의식은 만약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가축과 같이 죽게 될 것이다라는 생명을 건 언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타는 횃불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횃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왔다갔다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 만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왔다갔다했던 것입니다.
무슨 의미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그 뜻은 아브라함이 때로 부족해도, 종종 믿음이 흔들릴 지라도, 연약해서 자주 넘어질 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고, 그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나는 내 손으로 많은 것을 붙잡고 있었지만,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손에 놓아둔 것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뜻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내 계획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올려둔 하나님의 뜻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여러분이 부족하든, 연약하든, 실패했던 그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갖고 계신 그 뜻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나는 실패했어도,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