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5:1~17>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것이 마냥 쉬울 수만은 없습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나와 너무 달라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간혹 나쁘기도 하고 악하기까지 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리적으로 어떤 충돌이 있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누군가를 향한 미운 마음에 사로잡힐 때도 있고, 그들을 향한 저주의 마음까지 들 때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 21절과 22절 말씀을 보시면,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실제로 사람을 죽인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것 역시 큰 죄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그들은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15절에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 세상의 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성경의 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과 에돔 그리고 블레셋을 향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두 가지의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한 죄입니다.
둘째, 이웃의 불행을 기뻐한 죄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4개의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국경이 인접한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중국이 이웃국가들로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지만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분쟁의 원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역사 속에서 여러 분쟁의 요소들이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식들로부터 시작된 나라들인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신2:5).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 발락은 발람선지자를 매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고, 악한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고 분열시키려 했었던 것입니다. 사사시대를 걸쳐서 모압과 암몬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실제적으로 지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시대 이후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주변국들과 전쟁이 시작되면 가는 곳마다 승리했고, 다윗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국가들인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블레셋 같은 나라들을 정복해 이스라엘의 봉신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봉신관계는 솔로몬 때에도 지속되었고,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이 되었지만 남유다의 영향력은 그 이후로도 그들 나라를 향해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바벨론에 의해 유다 족속이 공격을 받아 성전이 훼파되고,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암몬 족속은 ‘아하 좋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그들은 이스라엘의 불행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고 즐거워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모압이 이스라엘을 멸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고, 12~14절에서는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나와 있는데 그들은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바벨론 편에 서서 유다의 습격을 도왔던 것입니다(12절, 시137:7, 렘49:7~22). 블레셋 역시 이스라엘의 오랜 적이었고, 호시탐탐 그 땅을 노렸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 역시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들의 죄 중에는 하나님의 사람(백성)을 저주한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12: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벌을 받지만, 그들의 이름에는 ‘하나님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형제들이나,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우리에게 물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이웃의 불행을 기뻐했다는 것인데, 그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 받을 뿐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그것이 내가 받아야 할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불행한 일을 겪을 때 그것을 함께 안타까워해 주며,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한 죄’ 그리고 ‘이웃의 불행을 기뻐한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간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