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9~30>
우리의 몸에는 여러 기관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그 영향은 온 몸에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2년 전에 갑상선에 암이 생겨 수술을 한 바 있습니다. 갑상선은 목의 앞부분에 위치하는 내분비기관인데, 거기서 갑상선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한 쪽 날개폭이 2cm에, 높이가 5cm에 불과하고, 무게가 15~20g 밖에 안 나가는 작은 나비모양의 기관이지만 만약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면 호르몬에도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특별히 갑상선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은 몸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되면 먹은 음식이 빨리 타서 없어지고 위장의 운동속도가 빨라져 화장실을 자주 가거나 설사를 한다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하고, 반대로 적게 분비되면 맥박도 느려지고 위장운동이 느려져 변비가 생기고, 얼굴과 손발도 붓고 체중도 증가하고, 정신활동도 저하되어 말이 느리고 어둔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면 평생 약을 먹으며 약에 의지해 호르몬 조절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그 작은 기관 하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몸에 그런 기관이 있는지도 모르고,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는 기관이지만 이 작은 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평생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의 모임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교회의 머리를 예수 그리스도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엡4:15).
그리고 에베소서 4장 16절에 의하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몸은 각 마디를 통해서 서로 도움을 받게 되고, 그 몸이 유지되고,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주님의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일은 곧 주 예수의 몸을 돌보는 것입니다.
만약 갑상선이 어느 날 ‘오늘부로 탈퇴 하겠다’하고 몸에서 이탈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몸과 건강에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공동체를 위해 섬기시는 분들이 한 분씩 한 분씩 혹은 한꺼번에 봉사를 중단하신다거나, 이탈하신다거나 하면 공동체에 여러 어려움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일찍 오셔서 음향과 설교 녹음과 편집을 준비해 주시기도 하고, 설교자를 위해 물을 떠 놓으시기도 하고, 피아노 반주를 해 주시기도 하고, 각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매일 중보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 공동체가 자라가는 것입니다. 주중에도, 주일에도 여러 모양으로 섬기시고 봉사하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성도 한 분 한 분이 귀하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주님 앞에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조금 더 헌신해 주시고, 어떤 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섬겨주시는데, 어떤 모양으로든 공동체를 섬겨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렇게 함께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20절, 21절을 보시면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추천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진실하게 목회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에 의하면 바울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는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한 몸인 공동체에서 누군가 이기적인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공동체는 건강하게 자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체들이 서로 섬기려 하고, 서로 봉사하려 하고, 서로 먼저 헌신하려고 한다면 그런 성도들이 많을수록 그 교회는 더 은혜롭고, 더 평안함과 기쁨 가운데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은 빌립보에서 성도들의 대표격으로 바울의 쓸 것을 돕기 위해 선교비를 갖고 온 에바브로디도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과로했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었지만,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그 병에서 낫게 되었습니다(26~30). 바울은 디모데 앞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며 그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던 즉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돌보던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기꺼이 추천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만약에 성도들이 교회를 이용만 하려고 하고, 자기 이기심만 채우려고 하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는… 그런 교회는 불행한 겁니다. 그런 공동체는 자라지도, 부흥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같이,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공동체를 위해 앞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공동체는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부흥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공동체를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교회’라는 하나의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돌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주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귀한 은혜와 사랑이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