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1~8>
지난 10월 10일에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대한민국과 스리랑카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8대0으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넣은 MVP 김신욱 선수에게 리포터가 ‘4골을 넣은 소감?’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김신욱 선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요. 벤투 감독님을 비롯한 우리 손흥민 주장을 비롯해서 선수들이 많은 도움을 줬고 그것으로 인해서 저희가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4골을 넣었다면 이 선수가 정말 탁월한 승부사 기질과 실력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 공(功)을 자꾸 다른 선수들에게 돌리니깐 기자가 이번엔 ‘벤투호 선발 데뷔전, 골을 예상했나’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실력이 있는 선수였는데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인 벤투 감독은 이 선수를 발탁하지 않는 것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 발탁되어서 월드컵 예선전에 선발로 뛰게 된 겁니다. 그래서 기자는 이런 질문을 했던 겁니다. 그랬더니
“저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오늘 같이 좋은 선수들이 쉬어가는 경기(※약체 스리랑카와의 게임이기 때문에)에서는 제가 팀에 도움이 되고 그(좋은) 선수들이 체력 비축해서 다음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제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천 축구선수라서 제가 이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인터뷰 내내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더불어 다른 선수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낮추고 다른 선수들을 높이는 겸손한 인터뷰를 보고, 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팬들의 김신욱 선수를 향한 칭찬일색이었습니다. 대표팀에서 최고참에 해당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겸손한 자세로 임하니 팀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축구는 아무리 훌륭한 스타플레이어 한 사람이 있어도 함께 뛰는 10명의 선수들이 좋은 팀워크를 보여주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고, 교회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인 진리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도요한은 부유하면서도 헌신된 평신도인 ‘가이오’라는 형제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4절에 의하면 사도요한이 영적으로 낳은 자녀와 같이 생각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고, 1절과 2절과 5절에서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사도요한이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성도였음을 짐작해 봅니다.
3절을 보시면,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사도 요한은 그가 영적으로 낳은 아들인 가이오에 대한 흐뭇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순회전도자 혹은 순회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요한이 있는 곳으로 와서 항상 하는 말이 어느 지역에 있는 ‘가이오’라는 성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영적으로 낳은 아들인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에 요한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진리 안에서 어떤 일을 행했을까요?
5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가이오는 순회 전도자들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그들이 계속적으로 복음 전도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랑의 섬김을 받은 전도자들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의 사랑을 증언하였다(6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주의 복음을 위해서 ‘나그네 된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선교사들을 위한 어떤 재정지원 시스템 같은 것이 없었을 때였고, 때문에 그들은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생계 부분에 늘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이었으니 어렵고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누군가 순회 전도자들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가이오의 선행을 기뻐하고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요한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영접하고,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흔히 ‘보내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영적 전투의 최전방으로 뛰쳐나가 마귀의 이에 물려 죽어가는 한 영혼을 건져오고 있고, 누군가는 후방에서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 중보기도와 사랑과 물질로 돕는 이들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 ‘가이오’를 칭찬하며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하며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 애쓰고 섬겨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들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들을 힘들게 하거나, 낙심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