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13~24>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이룩한 깨끗한 부자가 있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두 부류의 사람 모두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경우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건 그 결과적인 것만을 보고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편법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면서 또는 사회적인 해악을 끼치면서까지 부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평생토록 꼬리표가 하나 붙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고…. 비록 그가 지금은 의리 의리한 집에서 살고,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의 부를 자랑하며, 오만한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그의 부정적인 면들과 범죄와 악행들에 대한 꼬리표가 붙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부에도 역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믿음의 거부요, 기업의 거부가 나오게 해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꼬리표에는 ‘저 사람은 믿음생활하며 성실하게 살다가 부자가 된 사람이야. 저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야…’이런 수식어가 붙기를 기도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과 롯은 목축업을 했는데, 둘 다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브라함의 가축들과 롯의 가축 떼들을 한 곳에서 먹이기 어려울 지경까지 가축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갈라져서 각각 다른 곳에서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헤브론 지역으로 들어갔고, 롯은 당시 매우 풍요로운 지역이었던 소돔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란 남동쪽에 위치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가까운 3개의 부족국가들과 함께 연합군을 조직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던 소돔을 비롯한 그 주변의 여러 부족 왕국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미처 전쟁을 대비하지 못했었던 소돔 왕국을 비롯한 그 주변 부족국가들은 모두 패했고, 북방의 연합군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각 성에서 많은 재물들을 노략해 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 역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몇 부족과 동맹군을 조직하고, 자신도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데리고 북방의 연합군을 뒤쫓았습니다. 14절에 보니깐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헤브론에서부터 200여 km 떨어진 ‘단’이란 지역까지 쫓아가 깊은 밤중에 기습공격해서 그들을 쳐부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까지 다 되찾아 오게 됩니다.
17절과 18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아브라함이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나와 승전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았고, 신비로운 인물인 ‘살렘(예루살렘) 왕 멜기세덱’ 역시 아브라함을 맞이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할 때 소개하고 있는데, 신학자들 중에는 그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멜기세덱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길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축복기도를 받고 멜기세덱에게 전리품 중에 십분의 일(십일조)을 나눠주게 됩니다.
그런데 21절을 보시면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살렘 왕 멜기세덱과는 달리 소돔 왕은 백성들은 자기에게 돌려주고 대신에 전리품들은 아브라함 당신이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당시 고대사회에서 아브라함이 생명을 걸고 싸워서 포로들을 되찾아왔고, 재물들을 되찾아왔다면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소돔 왕이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물품이든 그것은 모두 아브라함을 더 강대하게 만들 수 있는 큰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이 ‘무슨 말을 하느냐? 이 모든 것은 내가 생명을 걸고 싸워 획득한 전리품들이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내 것이다.’라고 말해도 당시 사회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2절, 23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은 이 엄청난 기회를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소돔 왕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저렇게 강대해 진 건 모두 내 덕이다. 내가 아브라함이 강대해 지도록 밀어줬다.’ 이런 식으로 말할까봐 아브라함은 실 한 오라기도 갖기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22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 즉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복을 받은 것, 그가 장차 크게 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꼬리표가 되길 바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 세상적인 부자나, 성공자로 불리기보다 ‘믿음의 거부’가 되길 바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된 사람으로 불리길 바랐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개척되어서 어떤 특정한 한 두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건축도 하고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받아야 할 영광은 모두 그 특정한 유력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 그런 분들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고, 힘도 없고, 큰 재물이 없을지라도 새벽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일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 때문에 성공도 하고, 복도 받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거부’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는 인생을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