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1~21>
저는 개인적으로 무엇이든 복잡한 것 보다는 심플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승용차의 실내와 외부에도 최소한의 것 이외에 뭔가 다른 것을 부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부착하거나, 튜닝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그 차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자꾸 덧붙이게 되는 겁니다.
물론 개인 취향일 수 있지만 사람도 뭔가 자신을 과하게 치장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정말 예쁜 연예인들이 가끔 화장 안한 맨얼굴로 사진을 찍어서 자기의 SNS 같은 곳에 올릴 수 있는 것은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아도 일반사람들하고 비교 안 될 정도로 외모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주목을 받을 만큼 외모에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진짜 ‘믿음’이 뭘까요? 당장 내 손에 가진 게 없어도, 통장에 잔고가 떨어져가도, 보장된 미래가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다면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만 있다면 나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함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에서 길리운 종들 318명을 이끌고 200km 이상을 달려가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연합군을 무찌르고, 조카 롯을 되찾아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을 만났는데 그 때 아브라함은 불의한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래서 아무 보상도 없이 모든 소돔 백성들도 돌려보내주고, 소돔 왕에게 속한 모든 전리품도 돌려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거주지인 헤브론에 빈손으로 돌아오는데 데려갔었던 종들 중에 어떤 종들은 전쟁터에서 전사하기도 했고, 어떤 종들은 큰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룩거리며 부족장인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전쟁을 치르면서 그에게는 조카 롯의 생명을 구한 것 외에는 눈에 보이는 어떠한 보상도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한 쪽 구석에 허전한 마음도 들고, ‘나는 뭔가…, 믿음으로 산다고 그렇게 믿음으로 결정하고 불의한 소돔 왕의 모든 보상들도 포기하고 내 손에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게 뭔가…’ 이런 생각이 밀려 왔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부족은 작았습니다. 만약 자신이 무찔렀던 엘람 왕이 다시 군대를 정비해서 아브라함 부족에게 복수라도 할 거 같으면 그와 그의 부족은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가 되어서 그를 지켜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전쟁 후에 아브라함의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런 보상도 없는 것 같으니 아브람의 마음이 허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에게는 내가 있다. 내가 너의 상이다.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의 복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절부터 5절까지 자손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언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7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신 이유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 위함이었음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에 대한 언약과 땅에 대한 구체적인 언약을 아브라함과 체결하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6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람이 믿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여 지는 것은 없고, 손에 쥐어진 것은 없지만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2절에서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는 말씀의 [쉬운성경] 번역은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인정받았다. 믿음의 합격자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로소 진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도, 눈에 보여 지는 것 아무것도 없어도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리는 것들이 곧 실체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013년에 소개된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의 『Jusus All(예수로 충분합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Jesus + Nothing = Everything’이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져도 무언가를 계속해서 ‘갈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Nothing(아무것도)’임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Nothing일 지라도 우리의 인생에 모든 것이신(Everything) 예수님께서 더해질 때 우리의 삶에도 그 충분함이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상급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충분한 삶이 경험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