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3>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19세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17세 때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연주자가 되어 요즘의 아이돌 급의 인기를 누렸었습니다. 파가니니의 놀라운 연주를 들은 관객들은 감동한 나머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했고, 황제 나폴레옹의 여동생은 그의 연주만 들으면 까무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공연 중에… 악마가 나타나 연주를 도왔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는 그의 관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수준 높은 연주에 관객들이 감탄하며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이올린 선이 하나 툭하고 끊어져 버린 겁니다. 관중들도, 파가니니도 당황했지만 그는 나머지 세 줄만 갖고 연주를 계속했고, 그러다 또 다시 한 줄이 툭 끊어졌는데 그는 두 줄로만 연주를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세 번째 줄마저 끊어지고 말았고, 관중들은 ‘천재 연주자의 오늘 공연이 망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가니니는 남은 단 한 줄로 놀라운 연주를 이어 끝냈습니다.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 중에 현이 끊어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파가니니는 일찍이 한 두 개의 줄을 갖고 연주하는 기법도 독하게 연습해 뒀고, 나중에는 G현 하나로만 연주하는 곡도 만들어 뒀습니다.
우리 속담에 ‘서투른 목수가 연장만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짜 실력자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실력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증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에 당장의 사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일제의 총칼 앞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생명을 던져 독립운동에 앞장섰었던 애국자분들도 계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3절과 34절을 보시면,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험과 시련과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환난과 조롱과 소유를 강탈당하기까지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던 어떤 이들은 믿음을 버린 배교자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38절과 39절에서
“…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왔다고, 시련이 왔다고 뒤로 물러나는 것은 그의 믿음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제 우리 집사님 몇 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저는 지금까지 기도 응답 받은 게 별로 없는 거 같아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기도생활도 꾸준히 하고,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분들이셨기 때문에 제가 살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괜찮아요. 기도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을 느끼고 평안을 누리고 있어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교회 다니는데, 기도생활 하는데 기도 응답이 없다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진짜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 다녀봐야 별거 없네~’하면서 딱 개종할 타이밍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이 진짜믿음인 겁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아무 응답도 없으신 것 같고,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가 기록되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지금 우리의 삶 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환난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지만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습니다. 눈에 보여 지는 소망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절망의 끝자락에 또는 벼랑 끝에 그들은 내몰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조건과 상황과 환경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의 눈으로 내일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의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는 말씀을 쉬운성경에서는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환난의 때에 그들의 믿음이 증명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들의 믿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과 조건과 환경 속에 있습니까? 환경 때문에 주님을 믿고 안 믿는 것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때로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끝까지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감정이 어떠하든지… 믿음으로 삶을 살아내십시오. 말씀으로 인생을 살아내십시오. 상황과 환경과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믿음이 나의 전 인격과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