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4>
마태복음 7장 22절을 보시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인 마태복음 7장 23절을 보시면,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한 사역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매몰차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전도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도 일으켰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왜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고, 주님께서는 왜 그들을 모르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도 많은 이단 사이비 교주들조차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했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든지 그들의 기적과 업적과 전도는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일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복음을 변질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이단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할지라도 끝에 가면 그 교주가 우상이 되는 겁니다. 나중에는 그 교주가 재림한 예수님이니, 보혜사 성령이니, 참 아버지와 하나님이니… 이런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의 복음은 다른 복음이며, 가짜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 교주들의 생활을 보면 성적으로 문란하기도 하고, 많은 헌금을 개인의 사익을 위해 쓰면서 신도들 위에서 황제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복음을 전했고, 누구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고, 누구를 위해 귀신을 내쫓고, 권능을 행했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했을 뿐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진짜 믿음은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옮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절에서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정받았다고 했는데,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4절과 5절을 보시면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목축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어떤 분들은 기독론적으로 피의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라고 이 부분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구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는 부분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피의 제물도 관계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전 인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의 제사는 그냥 제물뿐이었기에 가인의 인격과 중심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인과 그의 제물까지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벨은 자신의 전인격으로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가인은 그냥 제물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초점이 자기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에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의 차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을 심방을 했는데 작년에 우리교회에 오셔서 은혜를 많이 받고 계신 분이십니다. 한국에서의 이전까지의 신앙생활은 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그냥 교회를 왔다갔다 하셨었는데, 우리 교회에서 오셔서 첫 예배 때 펑펑 눈물을 쏟으시면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깊이 만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심방을 가서 기도제목을 물으니 ‘이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초점이 바뀐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의 레벨로 영적 조리개가 맞춰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조리개는 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초점은 누구에게 맞춰져 있습니까? 초점이 내게 맞춰져 있는 사람은 나만을 위해 살지만, 초점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