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5~9>
[Audio 말씀]
어떤 분이 미국 국경과 가까운 멕시코 선교지에 방문했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에서 미국의 샌디에고로 차를 타고 국경을 넘었는데, 멕시코의 국경을 넘으면서 도로와 거리와 도시의 모습이 미국과 너무 차이가 커서 놀랐다고 합니다.
자막에 띄운 사진은 구글 지도(Google map)를 통해 보여드리고 있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모습입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보시기에 왼편은 황량한 광야 같은 곳이고, 오른 편은 계획적으로 잘 개발되어 있어 누구나 살고 싶어 할 만 한 깨끗한 도시의 모습입니다. 왼편의 광야는 멕시코 땅이고, 오른편의 잘 가꿔진 곳은 미국 땅입니다.
그런데 보기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멕시코 땅과 미국 땅은 땅의 질이 다른 곳이 아닙니다. 어떤 곳은 광야와 사막이고, 어떤 곳은 옥토처럼 좋은 땅이 아닙니다. 어쩌면 미국 땅도 보시기에 멕시코 땅과 같이 풀 한포기 자라기 쉽지 않은 광야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황량한 땅을 잘 가꾸고 개발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할 만 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홍익인간(弘益人間 :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라는 국가정신이 있는 것과 같이, 미국의 국가정신은 ‘프런티어 스피릿(개척정신 : Frontier Spirit)’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로를 타고 아메리카로 이주를 시작하고, 1787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서부개척시대를 열며, 미국인들은 광활한 그 땅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으로 오늘날의 세계 최강대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끈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수17:18)”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광야로만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광야가 기회의 땅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조건과 상황은 항상 변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땅을 개간하고, 개척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바꿔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뉴 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말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새로운 세계질서, 사회질서, 삶의 질서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지금의 상황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고, 코로나 이후가 내게 그리 소망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가본 곳만 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 발을 딛는 사람이 새로운 개척자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해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프런티어 스피릿(개척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담대하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코로나 이후 ‘뉴 노멀’시대를 살아가야 할 첫 번째 마음은 ‘담대함’입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 가야하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해야 할 때 두렵고 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떨림이 도리어 가보지 않은 곳에 가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할 때 느끼는 설레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 1장 1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부터 시작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 여호와의 종, 하나님을 대면했던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40년간 모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된 것입니다.
선임자가 너무 잘하면 그 뒤를 이어 하는 후임은 직전 선임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기가 죽어 원래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겁니다. 한국교회에서도 한 시대를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훌륭한 목사님들이 계신데, 문제는 그 목사님들이 은퇴하시고 후임으로 그 교회를 이끌어야 할 목사님들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담에서 자유 해 질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국자를 갖고 밥주걱이 하는 일을 하려고 하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밥주걱을 갖고 국자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하나님께서 각자를 그 쓰임새에 맞게 지으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신 소명과 사명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척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부흥과 성장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모든 사역을 안정시키고 건강하게 세워가는 사역을 해야 할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 40년을 위한 지도자로 부르셨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의 지도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괜히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며 살지 마십시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것입니다. 남으로 살지 말고, 나로 사셔야 합니다. 왜 자꾸 다른 사람의 옷을 걸칩니까? 왜 그 사람 흉내만 내다가 인생을 허비하시려 합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여러분의 인생을 사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만큼 못한다고 생각하니깐 낙심이 되는 겁니다. 아니 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그럴게 쓸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걸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그런 비교의식과 열등감과 불안함과 조급함과 낙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더 강해지십시오. 믿음으로 담대하게 맞서십시오.
오늘 본문인 5절부터 9절까지 다섯 구절 중에 담대하라는 말씀과 명령과 격려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6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7절에서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왜 이렇게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겠어요?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지금 여호수아가 가나안정복전쟁이라는 대업을 앞에 두고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나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나는 능력이 안 돼. 내 실력으로 어떻게…, 백성들이 나를 따르기나 할까…’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 하나는 이런 강하고 담대한 마음의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군사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군사력이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두려우면 그 좋은 조건으로 어떤 역사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사사 기드온과 300용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대는 미디안 135,000연합군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군대는 32,000명이었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줄이셔서 300명의 소수 정예군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 전쟁은 기드온의 300용사가 135,000의 미디안 대군을 격파한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습니까? 전쟁 전날 미디안 군사들 사이에는 ‘기드온’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사사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임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 기드온은 미디안 약탈꾼들이 두려워서 포도주 틀에서 숨어 탈곡을 할 정도로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니깐 기드온은 아주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적군인 미디안 군인들은 이상한 꿈도 꾸고,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군대의 신비스런 지도자로 착각하고 두려움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작 300명의 기드온의 용사에 무참히 짓밟히는 오합지졸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여호수아가 담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그 땅을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약속을 어기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맞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담대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9절에서도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나오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기죽지 마십시오. 하늘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나요? 환경이 변해도, 상황이 바뀌어도,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려도, 세상이 다 변한다고 해도 우리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이겼고, 기드온의 300용사는 미디안의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널 수 있었고, 예수님의 비천한 제자들은 세상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명작을 남긴 독일의 대표적 지성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할 수 있거나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시작하라. 담대함에는 재능과 힘과 마술이 있다(Whatever you can do, Or dream you can,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
실패할까봐, 못할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어떤 능력과 재능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담대함으로 지금 시작할 때 재능과 능력도 더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그 담대함이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할 것입니다.
2. 거룩하라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이라는 새로운 개척지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담대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인 담대함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세시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인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 이삭이 만난 하나님, 야곱이 만난 하나님에 대해 구전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성문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또는 율법의 말씀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인간에게 성문화된 율법과 성경이 필요하게 되었는지 그 예를 하나 들자면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해하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아론이 백성들에게 금귀거리, 금반지, 금목걸이 같은 금덩이들을 갖고 오라 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갖고 온 금 고리들을 녹여서 금송아지를 부어 만듭니다. 그리곤 ‘이스라엘아 이것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 여호와로다’라고 선포하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먹고 뛰어 놀며 부패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무지한 상황이 벌어졌냐면, 그 때까지 그들에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3장 20절에서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길과 표준을 제시하시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그 대업을 이룰 수 있는 핵심전략을 알려주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도 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면 그들 앞에 있는 뉴 프런티어(새로운 개척지)는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핵심전략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과 세속적인 전략으로 하지 말고, 믿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함으로 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한 국회의원이 최근 국회의원직 박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분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단체의 대표였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해 전 세계 곳곳에서 기부금을 받아 이 분이 관리했는데 얼마 전에 횡령, 사기, 배임의 의혹을 받고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범죄사실이 입증된다면 수천만 원의 벌금과 함께 10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되고, 국회의원직 역시 박탈된다고 합니다. 당연히 5월30일부터 시작되는 21대 국회의원직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에 당선이 되었지만, 이 문제 때문에 국회의원 노릇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낙마하게 생긴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단체의 대표였으니 얼마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정당에서도 좋은 일 하는 그 분의 공로를 인정해서 국회의원으로 공천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분이 바른 길로만 갔다면, 정직하고 진실하게 부끄러움이 없이 그 일을 수행했다면… 이 분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도 또 멋지게 새로운 인생 역사를 써 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 가장 유명한 서양인은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이란 분인데, 일본 최초의 대학인 훗가이도 종합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업학교’의 기초를 놓고, 초대 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그가 학교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갈 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정식적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짧은 재임기간 동안의 업적이 있는데 그 학교의 1기생들인 31명의 학생들을 전도하여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는 영적으로 충만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1861~1930)’는 삿포로 농업학교 2기 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가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그 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어 영적으로 뜨끈뜨끈한 믿음의 1기 선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찌무라 간조를 비롯한 친구들 7명이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학교의 거룩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고, 학생들끼리 학교 내에 임시교회를 만들어 예배하며 영적으로 뜨겁게 학창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입학할 때는 21명이었던 신입생이 졸업할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12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7명은 예수를 믿고, 나머지 5명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 다섯 명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대했던 이유는 주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학생들이 교회에서 예배하고 성경공부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찌무라 간조를 비롯한 친구들은 비록 월요일 아침부터 늘 시험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삿포로농업학교 2기생 12명의 졸업식 날이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을 마감하고 모든 점수가 합산되자 상위 1등부터 7등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 일곱 명의 크리스천 학생들이 차지하고, 그들이 모든 연설을 도맡았고, 졸업식 날 받게 되는 상 중에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상들을 그 일곱 명의 형제들이 다 받게 된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율법의 일부로서 안식일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안식일을 얻게 되는 ‘실제적인 이득’의 증거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시편 112편 1절과 2절에서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사람을 통해 증거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믿음의 길을 선택했다면,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처럼 한 번도 밟아 본적이 없는 새로운 개척지를 앞에 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담대하십시오. 더 강인해 지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거룩함이 승리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