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24~27>
[Audio 말씀]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자연재해가 참 많은 해인 거 같습니다. 미국에는 허리케인이 종종 있는데, 1992년 초강력 허리케인 앤드류가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를 강타했습니다. 이 허리케인으로 인해 11만 7천 채의 집이 붕괴되거나 파손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의 일반 주택들은 나무로 짓는데, 초강력 허리케인은 집이며 창고며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많은 방송기자들이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참혹한 현장에 속속 도착해서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건물잔해들로 쓰레기장처럼 되어 버린 한복판에 27채의 집들은 멀쩡히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재료도 별다를 것이 없었던 집들인데 특이한 점은 그 집들 모두가 NGO 단체 중에 ‘사랑의 집짓기’라고 불리는 ‘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운동’에서 지어준 집들이었습니다.
해비타트의 창설자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 1935~2009)’는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급히 플로리다로 넘어왔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CNN기자가 밀러드 풀러에게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멀쩡히 서 있는 것은 당신네 해비타트 집들뿐입니다.”라고 물었습니다.
밀러드 풀러는 구수한 앨라배마 사투리로 세 가지를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기독교 기관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풀러가 교회에서 듣던 얘기나 하는 거 같아 기자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시멘트에 사랑을 섞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집 짓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들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밀러드 풀러는 기자가 원하는 답과는 좀 먼 얘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풀러는 이어서 “프로 목수들은 43센티미터 간격으로 못을 박지요.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아마추어들이기 때문에) 2~3센티미터마다 못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지은 집이니 허리케인 앤드류에도 끄떡없었던 겁니다!”라고 했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다분히 기독교적이고 신앙적인 이유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세 번째 이유는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이권과 관계없이 오직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봉사정신만 투철한 아마추어들이었기 때문에 도리어 집을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못과 재료를 아끼지 않고 튼튼하게 지은 집들은 초강력 태풍까지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집은 어디에 지어져 있습니까? 모래 위에 지어진 위태한 인생입니까? 반석 위에 지어진 튼튼한 집입니까?
1. 재앙을 이기는 힘이다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는 심각한 재앙 속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잘 대비된 나라들은 그나마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나라들의 경우는 국민들이 수십만 명씩 죽어나가고, 나라의 경제가 파난 지경에 빠져 가는데 손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다만 하루 빨리 어떤 나라에서든 백신이 개발되어 그 혜택이라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시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예수께서는 비유로서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 구절에서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름철 아이들을 데리고 모래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을 간다면 꼭 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모래성 쌓기’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을 걸쳐 모래로 성도 쌓고, 길도 만들고, 동굴도 파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지만 밀물이 점점 들어오게 되거나, 큰 파도라도 치게 되면 한 순간에 그 모래성은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이런 모래성 쌓기를 나이 들어서도 평생토록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와 같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으로, 세계 최대의 부자 중에 항상 오르내리는 사람입니다. 주식투자의 신적인 존재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이 부분에서는 절대 실패가 없다고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돈을 버는 것과 투자에 관한한 최고의 사람으로 이 사람을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지혜를 배우려고 이 사람과의 한 끼 식사에 40억 원씩을 내면서도 이 분과 대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분입니까?
그런데 코로나 펜데믹으로 한참 고통스러웠던 지난 5월 기사에 보니깐 이 분이 최고경영자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회사(Berkshire Hathaway Inc.)’가 1분기 순손실이 우리나라 환율로 무려 60조843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너무 큰 단위의 돈이라 사실 우리는 잘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1조원이 얼마나 큰돈이냐면, 만약 어떤 사람이 하루에 100만원씩 쓸 경우에 1조원을 모두 쓰려면 2,740년이나 걸릴 만큼 큰돈입니다. 2020년 5월 기준 세계 부자 순위에 보면 67조원을 갖고 있는 자라(ZARA)의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주커버그’가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워렌버핏이라고 하는 투자의 귀재가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가 1분기 만에 61조원 정도의 손실을 봤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큰 겁니다.
그리고 올해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전망에 의하면 펜데믹으로 인한 세계 경제 손실 규모는 약 1경818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1경이면 십조, 백조, 천조 다음에 ‘경’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오는 겁니다. 그 엄청난 돈이라 할 수 있는, 세계 GDP의 10%가까이가 코로나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아무리 근사한 것으로 쌓아 올렸지만 모래성과 같은 겁니다. 코로나라고 하는 큰 파도가 한 번 쏴~하면서 밀려드니깐 그 위에 아무리 엄청나고 대단한 것으로 쌓아 올렸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보시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게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왜 성공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돈만을 위해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이나, 모래성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 서론에서 말씀 드렸던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의 창설자 밀러드 풀러에 관한 얘기를 전에 해 드렸던 적이 있는데, 원래 밀러드 풀러는 너무나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백만장자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독하게 공부해서 경제와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 다니면서 친구와 함께 유통회사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고, 29세의 나이에 대저택과 250만평의 토지를 소유했고, 별장과 호화로운 요트와 최고급 승용차들을 소유하는 백만장자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랐던 풀러는 자신의 인생에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들을 낳았지만 돈 맛을 안 그는 돈 모으는 재미에 빠져 휴일도 없이 일했고, 자연스럽게 어린 자녀들이 재롱부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사랑해서 결혼했던 아내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5년 만에 아내는 “돈만 추구하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욕망만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살지 않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란 메모를 남기고 가출해서 갑작스럽게 풀러 부부는 별거생활이 시작되었고, 밀러드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성장기 시절 돈이 없어 불행했다고 생각한 그는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정신없이 돈을 위해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돈은 얻었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밀러드는 도시의 모든 호텔들을 뒤져서 아내를 발견하게 되고, 그들은 밤새 깊은 얘기들을 나누게 되고, 밀러드 풀러는 침대 밑에 내려와 아내와 손을 잡고 자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곤 전 재산을 팔아서 교회와 대학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1973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3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봉사를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1976년 해비타트를 창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백만장자가 꿈이었던 그가 집이 없는 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비전을 갖게 되었고, 그가 2009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30여 년 동안 전 세계 150만 여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30만 채 이상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올 해 코로나로 인해 어떤 회사는 수개월 동안 수십조 원의 돈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무리 근사해 보일지라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부딪치면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밀러드 풀러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한 것 같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에 이르는 그리고 앞으로 해피타트의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듯 성인이 되어서도 모양만 달라진 것이지 인생의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고 보여 질 때가 많습니다. 한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망할 때에야 후회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재앙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재앙 속에서도 끄떡없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이 재앙을 이기는 힘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반석 위에 집을 세울 수 있을까요?
2. 믿음의 반석에 세우라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말씀하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리고 25절에서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절과 27절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24절과 25절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는 정 반대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래’와 ‘반석’만 다르지 문장 구조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 반대의 경우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데 왜 그들은 완전히 다른 땅 위에 집을 짓게 되었다고 성경이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24절에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26절에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과 비유를 하시게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시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지난 주간에 우리교회 초신자 성도님 중에 한 분이 “목사님,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했고, 다른 사람에게 사기도 치고 했던, 정말 나쁜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고 ‘나는 모든 죄를 용서 받았으니 나는 구원 받았다.’라고 하는 게 맞는 말입니까?”라고 물어 보셨어요.
여러분 맞습니까? 틀립니까?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참으로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거듭난 삶을 살아간다면 그의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21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시고 있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구원 받았다. 구원 받지 못했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태복음 7장 20절 말씀에 보시면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입에서 성경 말씀이 술술술 나오고, 기도하라 하면 유창하게 하고, 어디 봉사도 하고 선교도 하고… 정말 독실한 교인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정말 맺어야 할 신앙과 믿음과 인격의 열매들을 맺어가지 않는다면, 그의 삶이 예수 믿기 전과 믿은 이후의 변화된 것이 없다면…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는 기독교 라는 종교를 갖고 있는 종교인이지 진정한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그는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지, 듣고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때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도 무너져 가고, 교회라고 하지만 이상한 교회들도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애쓰고 몸부림 치고 있는 것뿐입니다.
만 39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20세기 뛰어난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이며, 반(反)나치운동가로서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님의 신학과 저술들은 당시 미쳐 날 뛰는 아돌프 히틀러 나치정부와 종종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1939년 6월, 그는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the City of New York)’의 연구교수직 제안으로 뉴욕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뉴욕의 맨하탄 타임스퀘어를 걷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상황이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미국은 그에게 신변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곳이었고, 신학교 측에서와 가까운 친구들은 이 기회에 독일을 탈출해 미국으로의 망명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본훼퍼는 ‘독일로 돌아가 독일교회와 함께 서 있으라. 신실한 증언으로 독일교회를 새롭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독일로 돌아가게 되면 히틀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고, 체포와 구금과 심문을 당하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훼퍼의 마음에 계속해서 맴도는 마음이 하나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는 것이다.”
본 훼퍼는 그 밤에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자들만이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독일로 돌아갔고, 나치의 사상으로 변질된 독일교회에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45년 4월 교수형으로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는 죽기 전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디트리히 본회퍼 –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 망명할지 아니면 독일로 돌아갈지를 고민하던 그 밤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독일로 돌아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신실한 주님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했고, 순종한 그가 주님의 말씀을 믿었던 진정한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래 위에 집을 세웠습니까? 아니면 반석 위에 집을 세웠습니까?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운 인생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재앙과 같은 폭풍이 몰려온다고 해도 그를 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엄청난 재난과 재앙 속에 있지만 믿음의 반석에 세워진 우리의 집과 우리의 인생은 든든하게 서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