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1~10>
– 동행(4) –
[Audio 말씀]
우리나라의 삼성 스마트폰이 지난 수년간 세계 판매량 1위를 이어왔는데, 애플이나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만해도 약 80년간 무선통신을 비롯한 IT분야를 이끌었던 회사는 미국의 ‘모토로라(Motorola)’였습니다. 저 역시도 오래 전에 모토로라 휴대폰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IT업계는 ‘누가 더 혁신적인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쟁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폰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물건인데, 삼성에서는 접었다 폈다 하는 폴더플 스마트 폰을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고, 모토로라도 삼성에 뒤이어 접었다 펼 수 있는 스마트 폰(Razr)을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씨넷(cnet)이라고 하는 IT매체에서 이 두 혁신적인 폴더블 스마트 폰을 갖고, 접었다 펴는 반복실험을 했는데, 삼성의 폴더블 폰은 120,000번 그리고 모토로라의 레이저는 2만7천 번을 견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성의 폴더블 폰은 실험도중 테스트 기계가 고장 나서 실험이 중단되었다고 하니깐 그런 문제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많이 반복 실험할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삼성 스마트 폰이 왜 세계 1위를 계속하고 있는지, 단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전화기를 하루에 100번씩 접었다 폈다를 하면 3년 3개월이 지나야 12만 번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100번 씩 폴더블 폰을 접었다 폈다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왜 이런 극한의 실험을 하겠어요? 진짜 좋은 스마트 폰은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짜 좋은 제품은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내구성에 문제가 없지만, 그 보다 못한 제품은 겉모양은 그럴 듯한데 극한의 조건에 가면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1년 가까이 극한의 상황 속에 내몰려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요즘 성도들을 만나든, 이곳에서 사업하시는 전도대상자들을 만나든 자주 하는 말이 ‘우리 잘 견뎌내요’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극한의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진짜는 시험에 강합니다. 진짜는 위기에 강합니다. 진짜는 시련 속에 더 단단해 집니다.
1. 광야 시험에 통과하라
모세 5경중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진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복되고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왜 그들에게 광야 40년의 생활이 중요했는가?’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지중해 무역로를 통해 지중해변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홍해를 건너 시내반도 남쪽으로 멀리 돌아 호렙산에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그렇게 40년간 광야생활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또는 호렙산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넉넉잡아 두 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던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40년 만에 가나안 땅 앞에 도착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선조들이 12정탐꾼의 보고가 있었던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광야 40년이라는 징벌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셔서 곧바로 가나안 땅에 입성시키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출애굽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도 잘 몰랐고, 그들의 마음도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가득했었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일찍 도착했을 지라도, 그들은 약속의 땅의 풍요로움에 젖어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신실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시면,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 두신 이유 중에 하나는 ‘너를 시험하사’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NIV)에서는 여기서 테스트(Test : 시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하고 기말고사를 보는데, 그 시험을 잘 통과해야 다음 학기를 갈 수가 있고, 그 학년을 보내는 동안 모든 시험을 잘 통과해야 다음 학년에 진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점미달인 학생이 다음 학년에 진학하면 그 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게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테스트) 이라는 것은 다음 단계를 진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 것입니다.
시험(test)이라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 그 학생의 실력을 알아야 하기에 필요하고, 학생 입장에서도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 지 객관적으로 알아야 하기에 꼭 필요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부족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서 다음 단계로 승급을 해야 그 승급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필리핀 세부는 많은 조기유학생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오는 곳입니다. 보통 짧게는 1년 좀 더 길면 3년 정도 생각하고 엄마들이 오시는데, 처음 오시는 학부모들의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직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데 그런 아이를 필리핀 사립학교에서 제 학년에 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자녀가 친구들하고 같은 학년에 다니지 못하면 뒤쳐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기유학생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휴학하고 어학연수도 많이 옵니다. 우리 청년들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영어를 하나도 못하니깐 휴학하고 여기서 영어를 공부하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면, 초·중·고등학교 때 1~2년 늦는다고 우리 아이 인생이 뒤처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대학 가서 휴학하면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어릴 때 여기 와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가 되어버리면, 혀가 굳어가는 청년 시기에 뒤늦게 여기 와서 어렵게 영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이 많다는 걸 왜 생각 못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선 당장 가나안 땅에 입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과 신앙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나안 이라는 풍요와 축복은 그들이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는 지름길일 뿐이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40년이라는 시험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지난 1년간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뭘 하려고 해도 손발이 묶인 것처럼 생활과 활동에 많은 제약들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성도들 심방을 가려고 해도 조심스럽고, 성경공부 모임 하나 개설하기도 힘들고, 교회조차도 자유롭게 오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직장을 잃고, 사업장 문을 닫고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외국인으로서의 의료 지원도 걱정되니 그냥 한국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일 수도 없고, 어디를 돌아다니기도 어렵고, 할 수 있는 것에 많은 제약들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 거 같습니다. 성경을 읽는 양도 많아지고, 기도 시간도 많아지니 개인적으로 골방에서 기도하시다 방언을 받는 분도 계셨습니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여러 가지 비대면 영적 훈련에 참여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그 훈련 중에 [예수동행일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요즘 온라인 어플을 통해 매일 저녁마다 ‘경건일기’를 쓰시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마감합니다. 이 훈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그 어플을 통해 다른 분들의 일기를 보며 도전도 받고, 은혜도 받고 있고, 댓글을 통해 격려해 주고, 함께 기도제목도 나누고 중보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매일 저녁마다 경건일기도 쓰지만, 우리 성도님들의 일기를 보다가 울컥울컥할 때가 많아서 매일 저녁을 그렇게 은혜로 마감하며 하루를 정리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 집사님께서 필리핀 사업장 문을 닫고, 한국에 들어가 비좁은 공간에서 격리생활을 했던 일들과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감사했던 일기를 쓰셨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의 집을 버려두고 도망 오듯 나와서 불편하고 비좁은 공간의 오피스텔에서 2주간의 자가 격리를 했다. 언제 코로나가 종식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매일 아침에 확진자가 몇 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로 마음이 답답하고 어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때 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 읽고, 듣고, 기도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게 이(시편 23편) 말씀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주님이 계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이 날 인도 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조그만 공간이라도 지낼 곳이 있고 먹을 음식도 제공받고,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중략) 코로나로 잃은 것도 있지만 이 시간들로 난 조금씩 변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것들에 우선을 둘 때는 수많은 우상 속에, 수많은 경쟁 속에, 수많은 욕심 속에… 살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날 변화시키고 회개 하게 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 되게 했음을…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으시구나’ 하고 느낀다. 난 이 기간이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사랑하고 계심을,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느낀다. 코로나가 종식이 되더라도 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삶이 유지되기를, 더욱더 내 자아가 없어지기를, 오늘도 기도 합니다. 여호와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내겐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손승연 집사, 2021. 1. 22)』
우리가 지난 1년이란 시간이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으니 참 더디게 가는 것 같았는데, 돌아보면 순식간에 1년이란 시간이 휙 하고 지난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작은 거 하나에도 감사하고, 좀 더 단순하게 살며, 많은 욕심들도 내려놓고, 인간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바라며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매일 아침마다 내릴 하늘의 양식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던 심플한 삶이 지금 우리의 삶과 많이 비슷합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드시는 시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주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마음의 그릇을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기간을 주님을 바라보며, 광야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이 없다면 다음단계로의 승급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온 광야라는 시험은 우리 인생의 재앙과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땅에 들어가는 믿음의 테스트인 것입니다. 이 광야에서 환경을 불평하고, 원망과 남 탓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지 마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감당할 큰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광야 시험은 믿음으로 무조건 통과하시길 축복합니다.
2. 겸손과 믿음을 갖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통해서 그들에게 바라시던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리길 원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첫 번째는 마음의 ‘낮아짐’ 곧 ‘겸손’입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는 유명한 잠언의 말씀과 같이, 잘 나가던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높아지고 거만해 지면 한 순간에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많이 보게 됩니다.
차기 대통령 감으로도 거론되고, 수많은 국민들과 지지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고, 높은 권세에 올라 천하를 호령할 것만 같았던 사람일지라도 교만하면 패망합니다.
설교 서론에서도 잠시 말씀 드렸지만, 80년간 무선통신 부분의 절대적인 강자였던 회사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솝 우화 중에 있는 얘기처럼 앞에 달리던 토끼가 자기의 빠른 발만 믿고 방심하고 낮잠 자다가 거북이한테 추월당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잘 나가고,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이 드는 순간 방심하고, 혁신적인 생각을 못하면 느림보 거북이라고 생각했던 무명의 혁신적인 기업들에게 추월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눈이 감기고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겸손한 마음은 눈을 크게 뜨고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향해 나갑니다. 그래서 쉴 수가 없는 겁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세계 축구계에서는 무명의 팀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작은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우린 아직 배고프다’라고 인터뷰 했었는데, 그 헝그리 정신은 우승 후보였던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폴란드 같은 유럽의 강호들을 꺽고 세계 축구 역사에 신화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늘의 은혜는 낮은 곳,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막과 황무지 밖에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밭에 물을 댈 수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최소한의 생활 속에서 매일 새벽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바라보고, 그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만약 내일 만나가 내리지 않는다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매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가난한 심령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많이 가진 사람도, 힘 있는 사람도, 잘 난 사람도, 예쁜 사람도… 생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그러니 낮아질 수밖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 1년간 우리가 그 광야 속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참 많이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잘 난 사람도, 아무리 큰 부자도,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아무리 대단한 나라라 할지라도 전염병 앞에 너무나도 무력한 겁니다. 보잘 것 없는 부직포로 만든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고 다니다가는 죽음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낮아지게 만들어 갑니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될 때만해도 날이 무더워지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날씨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예상하고 예견했던 것들이 족족 빗나가 버렸고, 변종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앞으로 또 어떻게 이 사태가 바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1918년 6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스페인 독감이 퍼져 전 세계 인구 1/5이 감염되었고, 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세배나 많은 5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력한 스페인 독감은 1년 만에 치료제나 백신이 없었던 상황에서 자연적으로 종식이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의학기술도, 시설도, 약도 없던 시대에 5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종식된 것을 학자들은 미스테리 하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라는 전염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전 세계가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약들이 도움이 될 거고, 코로나 종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종 바이러스도 자꾸 생겨나고, 백신의 부작용도 걱정이 되고,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자꾸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와는 비교조차도 안 되는 100년 전의 무시무시한 스페인 독감이 인간의 힘과 기술로 종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는 세계 곳곳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년 만에 종식이 된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매일 온라인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제가 ‘백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신이 게임체인저가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소멸해 주셔야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두 번째 마음은 ‘믿음’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에는 농사지을 땅도 물도 없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족함 없이 먹이시고 입히셨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요, 자연과학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했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9~1292)이
“만일 누가 믿음을 잃었다면, 그에게는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무엇이 남았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의지하고 살던 많은 것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인생의 광야 길을 걷는 이들이 믿음을 잃었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가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광야의 길을 걸을 때, 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광야를 걸으며 우리는 더 낮아졌지만 이 겸손과 믿음은 광야를 걸어갈 때, 이 광야라는 시험을 능히 이기게 할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