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13~23절> – 복음으로 돌아가자(41)
2024년 5월 19일(주일) 낮 예배
대부분의 성도님들을 큰 관심이 없겠지만, 20여 년 전에 미국의 ‘피터 와그너’라고 하는 신학자로부터 시작된 ‘신사도 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이란 기독교 관련 번영 신학이라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몇몇의 목사들로부터 우리나라에는 15~20년 정도 즈음부터 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미국 캔자스시티에 가면 24시간 365일 기도하며 예배하는 ‘국제 기도의 집(IHOP)’이란 게 있는데, 저도 가 봤지만 이것 자체는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도 그곳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365일 24시간 예배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IHOP이란 단체가 ‘신사도 운동’을 베이스로 갖고 있습니다.
판교에 가면 [더크로스처치]라는 곳이 있는데, 이 교회를 중심으로 미국 IHOP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국 기도의 집(NMC)’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도시 안에 있는 ‘기도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 유튜브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이 교회 출신 중에 유명한 사람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얼마 전 충격적 이슈가 터진 [KAM 선교회 & 라이트 하우스]를 설립한 ‘데이비드 차(차형규) 목사’라는 사람이고, 또한 사람은 ‘박혁 전도자(Brother Hyeok)’라는 사람입니다.
유튜브에서만 수십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사람들이고, 영상을 한 번 올리면 수십만의 조회수가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신학적 베이스는 <신사도 운동>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같이 이 시대에도 새로운 사도들이 세워져야 한다’ 라는 게 그들의 신학입니다. 문제는 ‘사도들에게 성경 말씀이 계시 되었던 것처럼, 신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되고 있다’라고 믿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 66권으로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특정한 사람들이 지금도 ‘직통계시’를 받고 있고, 그래서 특정한 몇 사람들은 그 ‘신사도가 자신들’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수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들에게 열광할까요? 나는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저 사람들은 듣기도 하고, 예언도 하고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종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딱 떠오르는 문장이 ‘21세기의 세련된 이단’이란 겁니다. 우리나라 토종 이단들이랑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미국에서 건너오다 보니 뭔가 좀 멋져 보이고 세련되게 보이지만 그럴듯하게 옷을 입힌 세련된 이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서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끝이난 겁니다. 더 이상 더할 수도 없고, 성경에서 특정 부분을 빼서도 안 되는 겁니다. 관련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또는 성경을 엄청 많이 알고 그리고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해서 또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직통으로 받아서 예언하고 그런다고 해서 그게 믿음 이 좋은 겁니까?
믿음이 좋다는 건 무엇일까요?
1. 내가 걸림돌이 되지 말자
지난번에 나눴던 로마서 14장 1~12절까지의 내용에서는 ‘음식과 안식일’로 말미암은 성도들 사이에서의 갈등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믿음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과 믿음이 약하다고 하는 사람 사이에서 종종 있었던 교리적인 문제였고, 신앙적인 갈등이었습니다. 13절부터 23절까지의 오늘 본문은 그 부분에 대한 <실천편>으로 보면 됩니다.
13절 말씀을 보시면,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음식에 관한 문제와 안식일에 관한 문제는 유대인이 이방인을 비판하고, 믿음이 좋다는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비판하는 꺼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키느냐, 율법에서 자유하느냐’라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는 ‘율법이 불필요한 게 아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지만, 그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새가족 성경공부> 중에 『예수 믿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5주짜리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1과에서 ‘예수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습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드리고, 제가 우리 새가족 성도님 중에 한 분에게 “성도님, 만약 오늘 죽는다면 천국에 가시겠어요? 아니면 지옥에 가시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성도님이 “천국에 가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하시는 겁니다. 이 성도님은 이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는데, 천국에 가기엔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고, 아직 죄도 있다고 생각되니깐 천국엔 가고 싶은데, 그 확신은 부족했던 겁니다.
지난주에는 제2과에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드리고, 제가 그 성도님께 또 물었습니다. “성도님, 만약 오늘 죽는다면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서 눈을 뜨실 거 같아요?” 그랬더니 우리 성도님이 이번엔 밝게 웃으시면서 “천국이요!”라고 확신 있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첫 번째 주에만 해도, 천국에 가기엔 이 뭔가 부족하고, 뭔가 더 해야 자신할 거 같고, 십계명도 지켜야 할 거 같고, 아직 죄도 많은 거 같고… 그러다 보니 천국에 갈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로마서 8장 1~2절 말씀에서처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를 정죄하는 모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니 나는 부족하고 죄가 많으나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과 천국에 갈 확신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문제, 이들의 문제 믿음이 좋다고 하는 그들은 ‘예수를 믿기도 해야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뭔가를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 아닌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관인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 13절에서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 하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이란 말의 영어 성경(NIV)를 보니깐, “… any stumbling block or obstacle…(어떤 걸림돌이나 장애물)”를 형제 앞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믿음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시험 들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시면,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유대계 성도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이방인 성도들이 율법에 금하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도,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자신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 한다고 유대계 성도들을 비방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대계 성도들이든, 이방인 크리스천들이든 그들 모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걸림돌이 되면 안 되는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임시제직회]를 소집했었는데, 우리 집사님들이 자주 모일 수가 없으니깐 그 안에서 [목양 협력위원회]라는 작은 의결 기관을 하나 더 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오래 출석하신 분중에 봉사 생활과 십일조 생활과 기도 생활등등 여러 부분에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분들 중에 몇 분을 목양협력위원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중에 두 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귀한 직분을 주신 건 너무 감사한데 자신들은 아직 너무 부족하고, 그 자리에 있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 직책을 내려놓고 싶다고하시는 겁니다. 집사님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분들에게 혹시 자신들이 누가 되지 않을까’ 해서 혹은 ‘자신들이 다른 분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을 때 섬겨주시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사임을 받아줬습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을 보시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저처럼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말과 행실과 삶에있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중에 항상 조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혹여라도 내가 걸림돌이 되면, 내가 누군가에게 시험 거리가 되면, 내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믿음을 더 떨어뜨리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자
저 같은 목사처럼 사람들 말을 잘 믿고,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사람마다 좀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목사님들은 대체로 속이기 좋은 직업군의 사람인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은 누군가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그냥 말하는 대로 순수하게 그냥 믿어주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에 오시는 성도들의 인상이 안 좋거나, 목소리가 거칠거나, 옷차림이 불량하거나…
그렇게 보여지고 느껴지는 대로 성도들에게 선입견을 갖게되면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만약 그 사람이 죄인이고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목사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50~60대 남자분이 제게 전화를 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모르는 분인데, ‘본인이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날 밤에 공항에 가야 하는데 혹시 공항에 픽드랍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필리핀이고 이상한 사람이 많다 보니깐, 저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혹시 이상한 사람이면 어떻하지? 픽업하러 갔는데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하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안되기도 했고 ‘어디 도와 줄 사람이 없으니 교회 전화번호를 찾아서 목사에게 전화를 했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녁 스케줄 끝나고 10시 30분쯤에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5분 뒤에 다시 전화가온 겁니다. ‘목사님, 저녁에 저 데리러 오는 거 맞죠?’ 그래서 제가 ‘네, 저녁에 픽업 갈께요’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10분 뒤에 그분한테 또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오늘 한국에 가야 하는데 공항에 픽업을 해 줄 수 없느냐고 같은 말을 또 반복하는 겁니다. 순간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니, 선생님 제가 저녁에 픽업해 드리기로 했는데 왜 처음 전화하는 것처럼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나요?’ 물었더니,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우물 쭈물 하다가 ‘아니 그래서 확인 전화 한 겁니다’라고 둘러대는 겁니다. 이상한 겁니다. 진짜 어려워 도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쁜 목적이 있는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도움을 못 드릴 거 같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틀 뒤에 아내하고 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난리 난리가 난 겁니다. 얼마나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많은데, 무슨 일 당하면 어쩌려고 그랬냐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절대 가면 안 된다고… 막 그러는 겁니다.
제가 세부에 처음 왔을 때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믿음 이 얼마나 좋아 보였는지 돈을 열심히 버는 이유도 선교하고, 고아들 돕고 그러려고 한다고,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 음성도 듣고, 은혜도 받고 그런다고, 교회를 위해서 사는게 삶의 목적인 것처럼, 세부에 와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분들 도우면서 사는 게 사명인 것처럼… 그렇게 입만 열면 믿음의 말을 하고, 정말 은혜로운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순진한 저는 그런 말들을 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부터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보기 시작하고, 그 사람에게 교회라는 곳은 자신의 비즈니스(사기)를 위한 하나의 ‘숙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7절과 20절에서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무가 크게 쭉 뻗어 있고, 잎도 푸르고 풍성해 보여도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 입니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 보이고,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8절을 보시면,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믿음이 좋다는 게 영적인 부분에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게 있으면 그게 믿음의 증거일까요? 십자가의 수직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수평은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한 가지만 잘 되어 있는 것은 그렇게 보일 뿐이지 제대로 된 십자가 즉 신앙적 균형이 안 맞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것이 건강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숫자가 많아지고, 크고 멋진 성전 건물을 갖게 되고, 선교를 많이하고, 필리핀에서 한국에서 유명한 교회가 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 아닙니다. 성도 숫자가 좀 적으면 어떻습니까? 건물이 없이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세입자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그 어떤 업적들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제가 우리 교회를 생각할 때, 가장 기쁘고 감사할 때는 어떤 식당에 갔는데 그 사장님이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었는데, 광명교회 성도들은 다른 거 같아요. 식당에 식사 하러 오셔서 너무 친절들 하시고, 젠틀하시고, 너무 좋아 보이세요’ 라고 저에게 칭찬과 감사의 말을 전할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하면서 믿음이 좋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의 믿음도 성장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닌 지 오래됐다고 때가 되면 집사도 되고, 안수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고, 교회에서 그럴듯한 중직을 하나 맡는 게믿음이 좋은 거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첫 번째 교회이며, 첫 번째 목회 대상은 우리 세부광명교회가 아닙니다. 저를 매일 보고, 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저를 가장 잘 아는 우리 가족들이 제 첫 번째 목회 대상입니다. 제가 가족들한테 인정받지 못하고, 제 믿음이 칭찬받지 못한다면, 가족들한테도 인정받지 못하는 제가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제대로 목회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가족들 그리고 나와 이웃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진짜 믿음이 좋은 것은 나와 가족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은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