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11~14, 17>
우리 집사님 한 분이 학교 깐띤(매점)에서 <코리안 푸드>라는 아이템으로 석달 전부터 장사를 하고 계십니다. 거기서 집사님은 한국의 닭강정, 떡꼬치, 불고기… 같은 간식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닭강정은 학생들에게 최고 인기 간식거리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있던 그 학교의 다른 식당들과 매점들이 집사님의 깐띤을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어제 낮에 집사님이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선 “목사님, 목사님 큰 일 났어요. 다른 매점에서 우리 닭강정을 비슷하게 흉내 내서 팔기 시작했어요. 서로 겹치는 식품 아이템 안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걸 학교 측에 말해서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까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당장 학교 오피스에 말해서 따라하고 있는 그 매점이 더 이상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고민은 자신이 예수를 믿고, 주중에 종종 교회에도 열심히 가는 걸 필리핀 직원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 문제로 인해 혹시 다툼이 생기거나 하면 덕이 되지 않을 거 같아 고민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의 그 선한 마음을 칭찬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픈한지 3개월 밖에 안 된 매점을 다른 매점들이 모델로 삼아흉내를 낼 만큼 잘되는 가게가 된 것을 축하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싸울 수도 있겠지만 더 좋은 아이템과 맛으로 그 학교의 최고 매점으로 만들라고 축복해 드렸습니다.
오늘의 잠언은 “선한 눈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똑같이 두 눈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눈을 가지고 미움과 분노와 다툼과 거짓과 속임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눈을 가지고서 선한 것을 바라보고, 선한 일을 위해 살려고 애쓰는 분이 계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과 17절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서로 연관이 있는데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하였습니다. 부모는 나를 낳고 양육해 준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그 은혜를 모르고 경멸의 눈으로 아비를 조롱하고 어미에게는 순종하기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판이 임하는데, 그런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하였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경멸의 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눈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시면,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이 사람은 자신에게 더러운 것이 묻었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신약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의롭고 거룩한 척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부패하고 죄로 가득했던 것 같은 겁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지만 여전히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겁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선하고 거룩한 눈이 있었다면 자신의 죄된 모습, 더러운 모습을 먼저 발견할 수 있었을 겁니다.
13절을 보시면,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거만한 사람의 눈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겁니다. 교만한 눈을 갖고 있는 사람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잠언에서 교만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시면,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이것은 큰 칼과 작은 칼을 들고 있는 권력자를 말합니다. 그는 그런 권력을 갖고 가난하고 불상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돕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가산을 빼앗고 삼키는 나쁜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복을 받는 겁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이 모두 똑같이 반응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선한 눈을 갖고 있으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그를 돕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눈은 있지만, 우리의 눈은 선한 눈일까요? 아니면 경멸(11절)과 위선(12절)과 교만(13절)과 이기심(14절)의 눈입니까? 오늘 선한 눈을 사모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여러분 눈앞에 누가 있든지,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지 주님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과 선한 눈으로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을 바라보시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