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1~3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 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을 보면 묻는 것 중에 하나가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너는 무슨 꿈이 있니?”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그 예쁘고 귀여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자연스럽게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 때문에 꼭 그런 걸 묻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든 싫든 어려서부터 이런 말들을 듣게 되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 성공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유명해지는데 온 힘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1편 1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그런데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교만하지 아니하고, 오만하지 아니하고,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 구절의 문자적인 의미만을 보자면, 그는 크게 성공해서 큰 영광을 얻고자 하는 꿈도 비전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반절에 보시면, 다윗은 “…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왕으로서의 권력을 갖고 있었던 다윗은 더 강하고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지 않았을까요? 큰 업적과 공로를 세워서 길이 길이 그 이름이 존귀하게 불려지고 싶지 않았을까요?
다윗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반절에서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라는 고백처럼, 그는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잘난체하고 우쭐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고, ‘오만’은 ‘잘난체하며 남을 업신여긴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비슷한 뜻이지만, 남을 업신여기는 의미를 갖고 있는 오만은 교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좀 더 나쁜 태도인 것입니다.
다윗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거인 장수 골리앗을 죽여 멸족의 위기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대는 최강의 군대였고, 나라를 매우 부강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시편을 쓴 시인이었고,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그는 평생에 엄청난 일들과 공로와 업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1절에서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는 그의 고백과는 배치되는 행적들이 아닙니까?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룰 꿈도 꾸지 말고, 비전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좀 철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꿈이 꿈이 되지 말고, 목적이 목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꿈과 목적이 여러분의 우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여러분의 자랑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교만하고 오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세속적인 것이 다윗의 꿈은 아니었습니다.
시편 27편 4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이 세상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꿈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었던 것도, 그가 왕으로 이스라엘을 강대하게 만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것 뿐이지, 그것 자체가 그의 꿈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상담학 교수님께서 『목회와 야망(로버트 슈네이즈 著)』이란 책을 하나 추천해 주셨습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사가 목회적 야망을 삼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종이지, 자기 야망을 이루라고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인 숫자가 많아지는 것도, 큰 성전 건물을 건축하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목사인 저의 꿈이 될 수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한때 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내 꿈과 야망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겁니다. 한국도 아닌 필리핀에서 하나님의 양을 돌보고 양육하라고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내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 겁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 꿈은 하나님이다”라고 오늘 설교의 제목을 붙이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꿈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유일한 꿈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있습니다. ✓ 오늘 본문 3절에서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만이 나의 꿈, 우리의 꿈이 되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꿈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유일한 꿈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 안에서의 나의 꿈과 비전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