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전도서 4:1~3> 

2015년 4월에 정치권에 핵폭탄급 뇌물수수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한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후 약국 심부름, 신문배달, 휴지 수집, 막노동을 하면서 돈을 모아 사업을 일으켜 오늘날의 경남기업의 회장에까지 오른 우리나라에서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열심히 돈 벌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셨는데, 40세 때였던 1990년 사재 31억원을 기부하며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해서, 2015년까지 2만5천여명에게 30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화근이었던 거 같습니다. 유서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현전(現前)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성회장으로부터 각각 억대의 기부금인지 뇌물인지를 받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정치적 희생양으로 검찰의 정조준을 받아 조사를 받던 중에 여당의 인사들에게 구명요청을 했는데, 돈 받은 사람들이 ‘나 몰라라’하니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결국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또 뇌물을 건낸 그 분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순수했던 한 분이 억울함 가운데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 힘없는 이들이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그런 억울한 현실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때때로 그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런데 지혜의 왕 솔로몬이 살던 시대는 지금 이 시대보다 부조리가 더 심했던 때였습니다. 절대군주였던 왕은 백성을 압제했고, 노예제도가 일반적이었기에 주인은 종을 학대했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법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국가의 법에 의해 국민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고, 인권이 유린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 상황은 매우 심각했을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세가 있었고, 그에 반해 학대받는 자들은 짐승 그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겠습니까? 눈물이 그들의 매일의 양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냐면, 2절과 3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학대로 인한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차라리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이 이런 학대를 당하지 않으니 더 복되다는 겁니다. 또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세상에서 행해지는 이런 악한 일을 보지 못해 그런 학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 더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현실 속에 있는 이들에게 더 큰 슬픔은 1절에서 반복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주변에서 한 두 사람이 위로의 말로 붙들어 주면 그 시련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위로자가 없다면 그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이 없을 겁니다. 경남기업의 성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어제의 정치적 동지, 오늘의 인생의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배신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겁니다.

고린도후서 1:3~5절 말씀이 억울한 현실 속에 있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이 세 구절 안에 ‘위로’라는 단어를 다섯 번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다 위로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과 고난 그리고 억울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사람의 손을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이들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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