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저주 그리고 은혜”

<창세기 4:8~15> 

불교용어로 잘 알려진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한자성어를 잘 아실 겁니다.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반드시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한자성어들도 몇 개 더 있습니다.

▪ 자승자박(自繩自縛) :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스스로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 자업자득(自業自得) :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받는다.
▪ 종두득두(種豆得豆) : 콩 심으면 콩 난다.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서 이와 같은 한자성어들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말에 걸 맞는 얼마나 많은 실제적인 예들이 많았겠습니까? 그런 실제적인 예들을 지켜보며 현인(賢人)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이와 같은 한자성어들인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우주의 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7절, 8절에서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말씀을 기록한 전도서의 맨 마지막 구절인 전도서12:14절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벌은 당연한 것임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이후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가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와 마귀는 우리 마음의 점령군으로 우리를 이리저리 이끌어 다니며 우리의 인생을 파괴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가인은 죄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의 그런 잘못된 감정들을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8절을 보시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기서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라는 것을 다른 번역본(70인역, 사마리아 오경, Vulagta)에서는 ‘우리가 들로 나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가인이 아벨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가인의 마음속에 어떤 악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해 옮기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그의 아우인 아벨을 쳐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이며 그것도 피를 나눈 형이 동생을 죽인 패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그것에 대해 책망을 받았으면 거기서부터 회개하는 것이 죄를 다스리는 것인데, 가인은 죄에게 점령당해 버린 겁니다. 죄와 사탄은 가인을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실행했던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숨어 있는 것을 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창3:9)”라고 물으셨었는데, 가인에게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즉각적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도 그리고 가인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아담의 때와 같이 가인 역시 회개하기 보다는 부인하고, 변명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지배를 당하다 보니 회개가 없는 겁니다. 회개하는 것이 죄에 대한 지배권을 내가 갖기 시작하는 겁니다.

결국 회개하지 않은 가인은 죄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되는데, 11절~12절을 보시면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죄로 인해 가인은 땅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가인은 그 때부터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평생토록 목숨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慓)를 주셔서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살해당하는 일은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15절).

죄는 우리 인생에 저주를 가져옵니다. 죄는 우리에게 환난, 재앙, 두려움을 줍니다. 그것이 죄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아직 남겨두셨습니다. 또 어디를 가든지 살해당하지 않도록 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로 인해 반드시 그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호흡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체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회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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