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을 돌파하는 방법

느헤미야 4:1~6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산이 많기 때문에 과거 우리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아주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호랑이는 보통 몸길이 2.2~3.8미터에, 몸무게가 100~300kg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맹수입니다. 그런 맹수를 만났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겁니다. 즉,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두려움과 염려가 될만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기만 해도 그 위기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어떤 용사, 어떤 장수보다도 더 큰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자기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힘들게 이뤄놓은 성공을 한순간에 모두 다 날려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하자 사마리아의 총독인 산발랏과 도비야는 온갖 악한 말로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이겨보겠다고 나도 똑같이 행동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뿐이지 결코 얻을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런 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꿈과 비전을 향해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그 상황에 발목을 잡히고, 소모적인 그 싸움을 하느라 앞으로 한 발도 떼지 못하는 상황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런 방해와 저항이 왔을 때,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를 쓰겠지만, 그게 내 뜻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내가 그 감정적 문제를 극복하려고 애를 쓰기 보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도록 그 주도권을 드리고, 주님이 그 상황에 개입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저항을 돌파하는 방법’ 그 첫 번째가 ‘기도로 저항을 돌파하라’는 것입니다. 주변의 대적들의 엄청난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가 그 저항을 돌파해 나가며, 짧은 시간 안에 성벽 재건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힘으로만 하지 않고,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두 번째로 ‘비전에 마음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스포츠에서 종종 쓰이는 표현 중에 “최선의 공격은 최상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게임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종종 축구에서 어렵게 한 골을 넣고 그걸 지키겠다고 공격에는 소극적으로 하면서 수비적으로만 하다가 방심한 틈에 도리어 한 골, 두 골 먹히다가 결국은 그 게임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기를 보면, ‘차라리 더 적극적으로, 더 공격적으로 나갔다면 한 두 골이라도 더 넣고 차이를 벌렸다면 승리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가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갈 때, 이것저것 우리의 마음을 분산시킬 만한 문제들과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람인지라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감정을 소모하고,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지고 나면 나의 꿈과 비전을 성취하기가 너무 멀어지는 겁니다. 분명 그 주변의 여러 가지 상황들과 문제들과 어떤 저항들이 우리의 감정을 흔들고,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감정과 시간을 쓰다가는 절대 비전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비전에 더욱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조롭게 교회는 성장하고 부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들 사이에 있었던 어떤 비즈니스 관련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그 1년 여의 시간 동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그 일에 대한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 보니 “내가 이제 개척된 교회를 잘 성장시켜 가고 부흥케 하는 것도 바쁜데, 이런 이들의 일로 내 마음과 감정을 소모하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좋지 않은 상황들과 문제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 순수하게, 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가시기 위한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 공동체의 비전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느헤미야 4장 6절을 보시면,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산헤립과 도비야의 강력한 저항과 방해들이 있었고, 감정을 상하게 하고 낙심케 할만한 온갖 악한 말들과 조롱과 비웃음들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그 저항들을 돌파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예루살렘 성벽 전체를 다 연결해서 높이를 성벽의 중간까지 재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가 있었는데, 하반절에 보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영어 성경에 보니깐, “백성들이 온 마음(전심)으로 일했다(for the people worked with all their heart)”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성벽 재건이라는 비전에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했던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그 비전에 집중하니 못할 것도 없었던 겁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꿈과 비전이 있다 할 지라도, 그것이 단지 막연한 꿈과 비전이라면 그건 하나의 헛된 망상(妄想)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떤 꿈과 비전이라 할 지라도 누군가 거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결과와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는 ‘간절함과 절박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면, 다른 데 눈 돌릴 새도 없고, 마음을 빼앗길 새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걸을 때에도, 앉아 있을 때에도, 잠들면서도 그 꿈과 비전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해와 저항이 있어도 그것을 돌파해 나갈 힘이 생기는 겁니다. 비전에 마음을 집중해 보십시오. 어떤 방해와 저항 그리고 문제는 문제 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와 저항을 돌파하는 두 가지 방법을 기억하십시오.

첫째, 기도로 저항을 돌파하라

둘째, 비전에 마음을 집중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꿈과 비전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는 ‘간절함과 절박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면, 다른 데 눈 돌릴 새도 없고, 마음을 빼앗길 새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내가 더 집중해야 할 나의 꿈과 비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