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1~5>
제가 한국에서 처음 필리핀에 왔을 때 첫 인상은 ‘무질서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4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에는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마구 뒤섞여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오토바이가 차량 앞으로 튀어나와 추월을 하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고, 차량들이 끼어들기 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니지?’하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필리핀 교통은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라고 좋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제가 느끼는 바로는 ‘이건 그냥 무질서한 것’입니다. 기초질서를 어기며 산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불법(不法)’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법을 지키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무슨 말이냐면 ‘돈(뇌물)이면 안 되는 일도 없고, 그런 방법이 아니라면 행정적인 절차와 허가 등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의미가 함축된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법을 어기기 시작해서, 행정적인 여러 가지 면에서 불법이 일상적인 것이 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이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합니다. ‘무질서 속의 질서’는 그냥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법적 기준의 틀이 깨져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필리핀이 무법천지의 나라는 아닙니다. 엄연히 헌법에 따라 통치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다만 그것이 느슨하다 보니 불법이 많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지금부터 약 4,300년 전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불법이 가득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엄연히 헌법이 존재하는 이 땅도 이렇게 불법이 많은데, 성문법이 없었던(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인간들은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오랜 인내의 기간을 거쳐 인류의 심판을 결정하셨습니다.
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노아의 시대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6:11절에서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고 했고, 6:12절에서는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고 했고, 같은 장 13절에서는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라고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통해 당시의 부패상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오늘 본문 1절에서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의 영어번역(NIV)에서는 “I have found you righteous in this generation” 여기서 find(found, 찾아내다, 발견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하디 흔하면 찾을 필요까지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부패하고 타락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고,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죄에 섞여 더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그렇게 타락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시선에 들어온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노아’였던 겁니다. 뻘 속에 박혀 있는 찬란한 빛의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간혹 필리핀에서 시간 잘 지키고, 정직하고, 능력도 갖추고 있고, 젠틀한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필리핀에서 저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비록 나라는 후진국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이 후진화 되어 있을지라도 간혹 어떤 사람들은 빛이 나는 필리피노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하고 함께 일하고 싶고, 그런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은 겁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찾으셨던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의 질서에 따라 살지 않고, 하늘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이 정도는 어때? 괜찮아, 다 그렇게 살고 있어’라고 말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기꺼이 포기하고 믿음의 길로 가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자 애쓰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두루 살피시다가 ‘찾았다!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내가 찾았던 것이다!’라고 할 때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 보시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생명을 경히 여기실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는 말씀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쓸어버린다’는 말은 가치 없는 것을 쓸어버릴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간혹 극악한 범죄자들을 보며 ‘저 사람은 살 가치도 없다’라고 사람들도 생각합니다. 과연 성문법이 없었던 노아 시대가 어떠했을 거 같습니까?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불법이 가득했고 그런 범죄자들이 가득했던 시대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쓸어버리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연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실 만큼 타락한 세대는 아닙니까? 이런 어둠의 세대 속에서 우리는 빛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찾으시던 바로 그 사람으로 발견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