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0~20>
우리나라의 대통령 후보 등록이 마감되고 역대 가장 많은 후보들인 13명이 대통령선거 후보로 지원했습니다. 각 후보들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공약을 하고 있는데, 저는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 후보가 내세운 《747경제공약》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연간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7위 경제대국’이 그 공약의 내용이었고, 그 공약을 내건 후보는 평사원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회장에 오르기까지 샐러리맨의 신화와 같은 인물이었기에 국민들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그런 기적을 일으켜 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 후보를 열열이 지지했었을 겁니다.
그리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의 머리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은 그 공약 자체로서는 대단히 성공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공약은 공약일 뿐이었습니다. 달성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치였고, 기업인 출신으로서 그 대통령은 ‘회사에서 어떤 목표를 세울 때 그 이상의 목표를 두고 나아가듯이 그것이 하나의 목표였다’고 해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전 대통령이라고 해서 왜 헛된 공약을 했겠습니까? 그걸 목표로 해서 열심히 하면 거기까지 못가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의 계획은 한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의 계획과 약속이라 할지라도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잠언16: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의 계획도 실패할 수 있는데, 우리 인간이 자기의 지식과 방법과 계획만을 의지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태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동안 믿던 것을 내려놓고, 어떤 새로운 대상을 믿으며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아니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판단만을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그 믿음의 대상을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만을 의지하며 산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교회 생활을 통해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갖고 있었던 생각과 습관과 행동이 쉽게 바꿔질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 이전의 습관과 경험들에 따라,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에 따라 살아가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 땅에 왔지만, 그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 때문에 가족들과 거처하며 살아갈 터전을 잡을 수가 없이 계속 광야 방향인 남쪽으로 남쪽으로 옮겨가며 하루하루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엎친대 덮친격으로 그 땅에 기근까지 들어 아브라함은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에 거류하려고 가나안 땅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1~1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름다운 미인이었던 사라에게 ‘애굽에 내려가거든 당신은 나의 부인이 아니라 누이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태도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당시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 힘 있는 누군가가 남편인 아브라함을 죽이고 부인인 사라를 힘으로 빼앗을까봐 두려워서 그런 속임수를 쓰기로 했던 겁니다. 물론 고대사회 근친결혼이 허용되던 시대에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이기도 했기에 아브라함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웠고, 그 위기를 속임수를 통해서라도 모면해 보려고 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잘못된 계획은 바로 왕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바로 왕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흥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누이일 지라도 그가 달라고 하면 줄 수밖에 없는 절대 권력자였던 겁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왕으로부터 결혼지참금조로 많은 재물을 받고 아내인 사라를 바로 왕에게 넘겨주게 되는 비참한 지경에 내몰립니다.
그러나 17절 보시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은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와 언약도 위태하게 된 것입니다. 사라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사라가 바로의 부인이 되어버리면 그 모든 계획은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원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기가 막힌 방법이 있을지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에 치우치는 것은 반드시 또 다른 위기를 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실패한 우리 인생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우리를 그 죄와 고난의 현장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짚고 가야 할 것은 어제 나눴던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에 따라 살아갔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의 모습이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그의 실패의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내 지식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는 오늘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