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창세기 18:22~33> 

어떤 큰 문제와 큰 위기 같은 것들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위기가 크면 클수록 그렇게 큰 문제와 큰 위기가 올 수 밖에 없는 예비단계가 있었던 겁니다. 상처가 곪고 골다가 결국 터져 문제가 되는 것이고, 작은 병을 방관했다가 큰 병으로 발병하게 되는 겁니다.

어제 우리나라 19대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을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 어느 때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위기 가운데 있기 때문일 겁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국가를 운영해야 할 정부기능이 마비되고, 정치적으로도 구심점을 잃게 된 겁니다. 그러니 최근의 경제는 IMF(국제구제금융) 사태 때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미•중•일•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의 외교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국가안보 역시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단지 1~2년 사이에 되어 진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보수와 진보 정권 그리고 정치인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겁니다. 결국 우리의 작은 문제들, 잘못된 습관들 또는 죄들이 모여 나중에 큰 문제와 큰 위기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명의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신성함을 느꼈고,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의 출생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셨고, 아브라함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들어 주실 지에 대해서도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20절과 2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창세기 4:10절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을 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고 기록된 말씀을 아실 겁니다. 땅이 생명체는 아니지만, 아무도 그 살해 장면을 보지 않았어도 땅에 떨어진 그 피로 인해 땅이 목격한 것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고발하는 장면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라는 말씀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컸으면 그것에 대한 부르짖음(호소)가 크다고 표현하고 있겠습니까? 죄가 점점 더 커져서 그 악이 너무나 큰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소돔과 고모라로 가신다는 말씀이 20, 21절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기 때문에 이미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다 아시는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확인하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오래 참으셨지만, 이제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의미도 있는 겁니다.

두 명의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로 갔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23절에서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아마도 아브라함은 일전에 소돔 사람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 그들을 북방의 연합군으로부터 구해왔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쓰였던 거 같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 있었던 아브라함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롯이 소돔성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24절을 보면,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4절부터 31절까지는 아브라함이 어떻게든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먼저 그는 ‘그 땅이 비록 죄악 된 땅이지만 그래도 의인 50명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졌고, 그 50명을 봐서라도 그 땅의 심판을 유보해 주시길 부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에도 소돔이 워낙 악한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대에 자신이 없어서 의인45명, 의인40명, 30명, 2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 명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32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니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만약에 아브라함이 ‘만약 1명이라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니이까’라고 했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요구를 들어 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 5:1절에서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애가 3:22절, 23절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얼마나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영원히 기다리고만 계시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아직 그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가운데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그 소돔을 빠져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가정이 살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시고, 지체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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