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창세기 22:1~2>

수년 전에 『별에서 온 그대』라는 TV드라마가 했었는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한류열풍을 크게 일으킨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며칠 전에 인터넷을 통해 그 드라마에서 나온 여주인공의 짧은 대화 장면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드라마 내용은 잘 모르지만 추측해 보건대 여주인공과 친구이면서 라이벌인 다른 여배우와 대화하는 장면인데, 여주인공이 그 친구에게 서운했던 것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그 친구에게 “너 나를 한 번이라도 친구로 생각한 적이 있었니?”라고 물으니깐, “어, 그건 미안. 한 번도 없었네”라고 비꼬듯 대답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여주인공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 참 더러울 때가 많았는데, 한 가지 좋은 점 있다.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척. 이 인생에서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나님이 주신 그 기회가 아닌가 싶다.”라고 하는 겁니다.

요즘 나이가 점점 들다보니깐 몸이 여기 저기 아프기도 하고 더 나이가 들어 건강이 약해졌을 때를 종종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불연 듯 스치는 생각들이 “만약 아내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많이 아프면 내가 아내를 정성껏 잘 돌볼 수 있을까? 반대로 만약 내가 아파서 가장 구실 제대로 못하면 아내는 나를 정성껏 잘 돌볼 수 있을까?”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저나 아내 모두 ‘그럼,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겁니다. 많은 부부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시련이 현실이 되었을 때는 진짜 아내를 또는 남편을 사랑하는 지 아닌지가 구분이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시험’이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에게도 시험이 왔습니다.

1절을 보시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13절에서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여기서의 시험은 ‘Temptation(유혹)’ 즉,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유혹을 가리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시겠습니까? 그런 시험은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나 오는 시험인 겁니다.

오늘 본문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Temptation이 아니라 ‘Test(시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테스트(Test)는 그 동안 열심히 학습하고 훈련한 바를 점검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 제대로 잘 만들어졌는지 점검하고 확인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합격하면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것은 바로 이 단계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다음단계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하위 레벨에서 더 훈련을 받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시험 때문에 죽겠네 살겠네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시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더 중요한 겁니다. 야고보서 1:12절에서 “시험(test)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그 시험을 인내로서 잘 견디어내고 통과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이란 것은 언제나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하시지?’라고 할 만큼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서 머리가 아프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겁니다.

2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주변에서는 자식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이 이해되는 말씀입니까? 우리의 논리와 생각과 경험과 판단과 이해를 무시하는 시험인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25년 만에 주신 귀하고 귀한 아들인 겁니다. 게다가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해서 내보냈고, 이제 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인신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통해서 드러나는 게 있습니다.
첫째, 말씀이라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둘째,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셋째, 무슨 일이 있어도 언약이 성취될 것을 믿는가?
넷째, 내 믿음의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다섯째, 나는 하나님의 진실한 친구인가?

지금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이 다섯 가지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고 생명의 면류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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