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46_28_9>
요즘 국정농단의 핵심 최순실 씨의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엊그제 뉴스를 보니 『삐뚤어진 모정으로 자녀 공범으로 전락, 법원, 최순실•정유라 ‘공범 인정’』 이란 뉴스타이틀을 떴습니다. 그녀는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저질렀고, 결국 자신이 가장 아끼는 딸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재판부도 최씨가 청담고와 이화여대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입학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딸 정유라도 인정을 했고, 그것을 모녀의 ‘공모’로 본 겁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판결 내용을 낭독하면서 정씨를 특혜 비리에 연류된 ‘공범’으로 표현했습니다.
2014년 12월에 정씨는 자신의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승마)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라는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2016.10.19. / 경향신문 보도). 여기서 특히 “돈도 실력이다”라는 내용에 온 국민을 분노케 만들었는데, 그런 가치를 갖고 살았던 엄마와 딸은 아마도 지금 많이 후회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 가치를 갖고 살았기 때문에 엄마와 딸이 함께 범죄자가 되어 전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무엇에 자신의 기준을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결말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준을 갖고 그게 옳을 줄 알고 평생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말년에 크게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27:46절을 보시면,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야곱이 장자권 축복을 아버지 이삭에게 받자, 그것에 격분한 쌍둥이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일이 커지자 엄마인 리브가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리브가는 45절 하반절에서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라고 말하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고, 위태 위태 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방법이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신시켜 놓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에게는 야곱의 결혼 문제를 핑계로 둘째 아들 야곱을 리브가의 오라비 이며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보내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리브가는 장남 에서가 가나안 지역의 여인들과 결혼한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고, 리브가와 이삭의 근심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만큼은 가나안 여인과 결혼시키지 않았으면 했던 겁니다. 이삭 역시도 그 부분에 동감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두세 가지의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가문의 혈통적인 순수함을 이어가길 원하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둘째는 도덕적인 순수함 역시 고려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도덕적인 질서들이 많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순수함도 고려했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을 통해 하란에 있는 그의 가문에는 여호와 신앙에 대해 아주 작은 신앙이라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가나안 족속보다는 리브가의 고향 땅에 야곱을 보내는 것을 추진했던 겁니다.
이삭은 리브가의 말을 듣고 1~5절에서 야곱을 언약의 상속자로서 인정하며 그에게 축복기도해 주고 밧단아람 땅 외삼촌 라반에게 보내게 됩니다.
자, 그런데 창세기 28:6절을 보시면,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그런데 그 과정을 장남인 에서가 보게 된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이 동생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는 이유 중에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라고 당부하고 있으신 겁니다.
그리고 28:8절, 9절을 보시면,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에서가 보니깐 자신의 결혼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요?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인 마할랏을 세 번째 부인으로 맞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에서는 선택받지 못한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겁니다. 뭔가 어긋났는데 계속 어긋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와 야곱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6절에서 “에서가 본즉” 또 8절에서 “에서가 또 본즉” 그리고 9절에서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늘 자기 자신이 기준이었던 겁니다.
반면 야곱의 기록을 보시면, 1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5절에서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가서” 그리고 7절에서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야곱은 부모의 말씀을 따라 갔고, 그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그 말씀 그리고 부모님의 명령이 그 기준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가? 에 따라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잘못된 기준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그 기준을 두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