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1~24>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30장 1절부터 24절까지는 한 때 친밀했었을 것으로 보이는 한 자매인 레아와 라헬이 야곱이라는 한 남편을 두고 벌이는 출산경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생이었던 라헬은 야곱에게 충분히 사랑 받고 있었으나, 불임으로 인해 여자로서 수치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여자로서도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반면 언니였던 레아는 야곱에게 사랑 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에게는 많은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라헬은 사랑 받고 있었지만 여자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레아는 사랑 받지는 못했지만 많은 자녀를 출산함으로 여자로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정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구는 결국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영적 교훈 역시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언니였던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여호와께서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의 태의 문을 열어주셨고, 창세기29:31절~35절 사이에 네 명의 아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을 주셨습니다. 동생이었던 라헬은 야곱에게 사랑 받았기에 많은 시간을 야곱과 보냈지만 그녀는 불임이었습니다. 라헬은 남편 야곱이 언니의 아들들을 안아주며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30장1절을 보시면,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시기와 질투가 극단적으로 될 때,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혹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해하려는 경향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라헬이 야곱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쉬운성경에서는 “나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자기 아이 낳게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거의 협박하고 있는 겁니다. 임신할 수 없었던 라헬의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2절에서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아이를 임신하고 안하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문제인데, 그녀가 죽어버리겠다고 야곱을 협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라헬이 그녀의 몸종인 빌하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낳겠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라헬과 레아의 본격적인 출산경쟁이 시작됩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대리모를 통해 서라도 아이를 낳겠다는 거고, 우리나라 조선시대로 보자면 ‘씨받이’와 같은 개념입니다. 고대사회 속에는 축첩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라헬은 없던 첩을 만들어서라도 자식을 낳아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자로서 남편에게 첩을 만들어 준다는 게 얼마나 가슴 찢어질 만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라헬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을 낳고 싶었습니다.
[3~8절] 라헬의 시녀 빌하를 통해 ‘단(억울함을 푸심)’과 ‘납달리(경쟁함)’가 태어났습니다. [9~13절] 레아의 시녀 실바를 통해 ‘갓(복됨)’과 ‘아셀(기쁨)’이 태어났습니다. 레아가 라헬과의 출산경쟁에도 질 수 없어서 그런 선택을 했지만, 첩이라 하지만 야곱에게 또 다른 여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 레아에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음을 18절에서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14~21절] 레아는 또 다시 임신해서 ‘잇사갈(값)’과 ‘스불론(거함)’ 그리고 딸 ‘디나’까지 낳게 됩니다. 그렇게 레아는 직접 여섯 명의 아들을 낳고, 한 명의 딸까지 낳게 됩니다. 그리고 몸종인 실바를 통해서 낳은 두 아들까지 포함해서 총 아홉 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동생 라헬과의 출산 경쟁은 언니인 레아의 완전한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레아가 다섯째 아들을 낳을 때인 1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상반절을 NIV에서는 “God listened to Leah(하나님께서 레아를 들으셨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이 둘째 아들인 ‘스불론’을 낳고 레아가 이런 고백을 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창29:33)” 레아는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는 분이심을 적어도 라헬보다 더 깊이 깨닫고 경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동생 라헬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22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이 구절에서 역시 NIV는 “Then God remembered Rachel; he listened to her(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녀의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언니인 레아에게 영적인 도전을 받았을 수도 있고, 그리고 언니와 첩들까지 총 11명의 자녀가 태어날 때까지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그 출산경쟁을 이겨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패배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언니 레아와 같이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라헬의 부끄러움을 씻으시고 그녀에게 아들 ‘요셉(더함)’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24절에서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다른 아들을 더해 주실 것을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에너지 낭비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빨리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열쇠인 것입니다. 여호와께 호소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