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1~12>
2016년 필리핀에 방문한 관광객 통계에 따르면, 1위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2위 미국(87만 명)과는 거의 두 배 가까이에 이르는 147.5만 명이 필리핀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3위는 중국, 4위는 일본 등입니다. 필리핀에 살다보니깐 동양인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겼어도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저 사람은 일본사람 같다. 저 사람은 중국 사람이다’라는 것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양계와 서양인들 관광객들의 두드러진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을 포함해 동양계 관광객들은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이 뭔가 많이 갖춘 모습입니다. 고급지고 화려한 옷에 비싼 카메라와 셀카봉을 들고, 관광 가이드를 앞세우고 도요타 밴에서 우르르 내립니다. 수영장 같은 곳에 가도 그냥 수영장 한 장만 달랑 입고 있는 사람들은 서양인들이예요. 동양계 관광객들은 모두 몸에 딱 달라붙은 세련된 레쉬가드를 입고 있습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집에서 입는 평범한 옷을 입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 다니든지, 여기서 7페소(한화 175원)를 내고 대중교통 수단인 지프니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합니다.
그런데도 서양인들은 멋있어 보이고 웬만하면 영화배우들 같아 보이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것저것 갖추고 있어야 좀 멋지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갖추고 있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이 뒤쳐진 사람처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동양적 사고와 어떤 가치들을 통해 형성되어진 현상들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자신 위에 뭔가 자꾸 하나씩 더해놔야 거기서 불안감을 떨쳐내고 안정감 같은 것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외모가 부족하다 여겨지면 화려한 옷이나 연예인급 화장이나 장식품들을 더하게 되고, 학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것저것 스펙들을 쌓기도 합니다.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는데, 사람들은 이 믿음에 서 있지 못하고 자꾸 그 어깨에 종의 멍에를 짊어지려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2절과 3절 말씀에 보시면,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구약의 율법에 보면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규례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 하나님께서 처음 제정하셨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언약의 백성과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백성과 구원 받지 못하는 백성을 구분하는 표시였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모두가 할례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할례 = 구원>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할례를 하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라는 그들의 믿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1:13절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았으나, 구원의 복음 곧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적인 할례가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로마서 2:28절, 29절에서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진정한 할례는 마음에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이 마음에 할례를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마음에 할례를 받았는데, 유대인들의 영향으로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들 위에 또 다른 어떤 종교적 짐을 지려고 하는 것이 갈라디아 교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원 받을 만한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 받았는데, 여기에 뭔가 어떤 것들 더해야만 내가 더 온전해 지고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여기에 여러분의 공로와 선행과 어떤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죄가 많아도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이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