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불평을 그치고…”

<민수기 17:1~13> 

‘불만(不滿)과 불평(不平)’이란 말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불만’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불평’이란 것은 그 불만족스러운 것을 부정적으로 평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상황에서 어떤 상황이 더 어려워지게 될 때 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사람은 그 잘못의 탓을 남에게 돌리게 됩니다. 그것을 ‘원망(怨望)’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만과 불평과 원망은 부정적 에너지를 내 인생에 가득 채우는 3종 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많아질수록 그의 인생은 행복해 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것이 커 질수록 감사는 메말라 버릴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많아질수록 그 가정의 행복은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상황이 좀 어려워도, 힘들고 어려운 문제의 산들이 내 앞에 버티고 있더라도 감사의 제목을 찾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해 보십시오. 이전에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도리어 감사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삶은 살만하며 얼마든지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라는 부정적 태도가 생기는 것은 ‘불신(不信)’이라는 감정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또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겁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못 마땅한 겁니다. 그 못마땅함이 결국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라는 부정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의 고라와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인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이 반역을 일으킨 것은 민족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못 마땅했던 겁니다. 고라는 자신도 레위지파인데 왜 아론만이 대제사장직을 하느냐? 하는 거였을 것이고, 장자지파인 르우벤 지파의 단과 아비람 같은 경우는 왜 모세만이 민족의 지도자인가? 하는 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반란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란의 주동자인 몇 몇 사람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부정적 태도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지도자들 250명이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분향을 올려드리러 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건이었던 겁니다. 이것은 단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법을 거부하고 그분을 멸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2절과 3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그리고 그 지팡이 열두 개를 하나님께서 그들과 만나시는 지성소의 법궤 앞에 놓아두게 했습니다(4절).

그리고 5절을 보시면,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와 아론이 자의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겁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까지 열리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8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법궤(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그 이유는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16장에서 250개의 향로를 쳐서 번제단을 두르는 철판을 만들어 놓아 그것을 볼 때마다 그 불순종의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 그리고 권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5절과 10절에서 반복하고 있는 비슷한 표현은 “원망을 그치고”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원망을 그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죽지 않게 할지니라”는 겁니다. 불만과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보다 자기의 뜻과 생각이 앞서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불신에서 시작된 겁니다. 그런 불신은 결국 죽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불만과 불평과 원망의 모습은 없습니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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