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27~24:9>
서울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아주 오래 된 수도입니다. 물론 명칭은 위례성, 한산, 한성, 한양, 경성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렸지만, 과거 백제와 조선의 수도가 서울입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도 서울에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은 한강이북 지역이었고, 서울의 4대문 이란 것 역시 한강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치와 행정과 경제와 교육 등 모든 것은 서울의 강북을 중심으로 움직여져 왔습니다.
전쟁 후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맞으면서 서울의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북과 강남의 인구비율이 7:3 정도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반 2~3년 사이에 서울의 인구가 100만여 명이 늘어나면서 도시의 수용능력을 초과하게 된 겁니다. 때문에 강남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 이후 강남은 아파트와 빌딩 숲이 되었고,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전국에서 가장 화려하게 발전된 그리고 가장 땅 값이 비싼 지역이 되어 있는 겁니다.
오랜 세월 광야와 같았던 지역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때로 광야를 걷는 것처럼 힘든 시기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축복하셔서 가장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주술사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축복하시는 민족을 저주하려는 것은 헛된 시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누가 하나님께서 하려하시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은 세 번째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장면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절을 보시면,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발람은 모압 왕에게 매수된 주술사였습니다. 때문에 발락이 하라는 대로 계속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주술사 발람에게 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발람도 자신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하게 여기심을 보고,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게 되어 예언을 전하게 됩니다.
5절부터 7절을 보시면,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요구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높은 곳에 올라가 광야 넓은 곳에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락과 발람의 뜻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축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재미있는 언어적 대비가 있습니다. 23:28절에서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라고 되어 있고, 24:1절에서 “발람이…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 40년간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광야 한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그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도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발락과 발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도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그 광야에 넓게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산에 올랐지만, 그들이 광야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그들이 아주 아름다운 거처에 있는 것처럼 보여 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골짜기가 있고, 강과 강변이 펼쳐 있고, 아름다운 동산들이 있고, 멋진 침향목들이 빼곡이 자라있는 산림들이 있고, 물가에는 아름다운 백향목들이 자라고 있고, 풍성한 물과 식물과 꽃이 피어나는 곳이었던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40년간 그래왔고, 지금도 광야에 집도 없이 천막을 치고 집시들처럼 떠돌고 있지만, 발람이 보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미래를 어떻게 축복하실 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이 광야에 떠도는 모습과 같이 처량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축복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듯이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다윗도 그랬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 역시 그러했었습니다. 내 인생의 광야에서 축복의 땅으로 이끄실 하나님을 소망하는 복된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