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9~18>
저는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얼마 전 있었던 우리나라 지방선거를 보니깐 보수와 진보의 대결에서 진보 진영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70~80%는 진보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사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야당이 정권을 견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닐 수 있습니다.
현대 정치사적으로 볼 때 원래 우리 국민들은 보수 성향이 강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판도가 완전히 뒤집어 진 것의 결정적인 원인은 보수진영에서 만든 이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너무 실망을 안겨준 겁니다. 그래서 국민 자체가 보수적 성향이 강했는데, 보수의 적극적인 지지자들 외에 나머지는 진보 진영으로 돌아선 겁니다.
이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대표적 사건이 뭐였겠어요?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민들이 느끼기에 대통령이 위기 상황에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국민과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에게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기에 국민들은 거기에 큰 실망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8절에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전투 준비를 알리는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그 성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전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나팔과 같은 사물일 지라도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 존재의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Calling)’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만물의 영장인 우리 각자에게 소명이 없겠습니까?
탁월한 분석가이며, 기독교 저술가인 ‘오스 기니스(Os Guinness)’라는 분이 쓴 『소명(The call) / IVP』이라는 책에서 소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오늘 본문 9절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거룩한 소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과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시면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도자와 사도와 성경교사로 세우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겁니다. 때문에 바울은 그 소명을 이루어가는 중에 옥에 갇혀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그 소명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며, 그 소명을 다 이루게 하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부터 17절을 보시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그러나 어떤 사람 ‘부겔로와 허모게네’같은 사람은 당시 교회의 중요한 인물들이었지만, 복음 때문에 고난이 오니 바울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은 바울이 옥에 갇혔지만 바울을 떠나지 않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부지런히 바울을 찾아가 위로했던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그를 부탁하며 그를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명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부겔로와 허모게네). 어떤 사람은 그 소명을 다하기까지 그 소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바울,오네시보로). 그리고 바울이 이 편지를 통해 용기를 주려고 하는 사람 디모데는 두려운 마음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소명에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사물 속에도 그 존재의 목적 즉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과 이유, 존재의 소명이 없겠습니까? 내게 주신 재능과 환경과 성장과정과 과거와 상처와 아픔과 모든 능력들…에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거기서 그 소명을 다하며 빛과 소금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은 무엇일까요?